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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May 13. 2018

퇴사할 때는 살이 찐다

어제까지 추억의 무게

입사만큼이나 퇴사는 절차가 많은 일이다.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인사드릴 사람도 많아지고, 그 덕에 그동안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사무실 구석구석까지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보게 된다. 

같은 회사지만 반가운 옛 팀 동료나 리더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차 한잔, 식사 한 끼, 간식거리 하나를 찾게 되고. 평소에는 2-3일 안에 먹어야 할 양을 한 번에 먹게 된다. 

동료가 나간다니 술자리도 한 번으로 끝나진 않는다. 

안 그래도 두둑한 뱃살이 나보다도 먼저 앞장서려 하고, 술자리에서는 더욱 탱탱하게 탁자에 걸쳐 앉는다.


벼락치기 같은 만남과 인사들이 무뎌질 즈음이 되니, 퇴사일이 되었다.

근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의 책상의 균형을 잡아줬던 물건들을, 커다란 골판지 박스에 몰아넣고 스카치테이프로 찌익 가둬둔다. 잠시 동안.

가벼울 줄로만 알았던 짐이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그래, 꽤 오래 다녔구나. 이곳에서, 내가 꽤 묵직해졌었구나.


오후 여섯 시,

딸내미와 아내가 회사로 마중을 나와줬다.

무거워진 짐 상자를 차에 실어 가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날 혼자 퇴근하는 쓸쓸한 가벼움을 꼭 안아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차에 싣고 바로 출발하기에는 아쉬운 이 곳을 기억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아내에게 저녁을 제안했다.

직접 뽑은 통통한 면발, 깊이 우려낸 국물, 그리고 눅눅해질까 봐 따로 담아주는 야채튀김을 내어주는 우동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내에게 이 집의 우동맛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동료들이 있진 않을까. 만약 누구라도 눈이 마주쳤다면, 그들과 함께 먹었던 따끈한 우동을 오늘은 아내와 딸내미에게 선보이고 싶었노라며 수다를 풀어냈을 텐데...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일까. 주변엔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배가 불렀다. 디저트를 채워 넣을 다락방 위장도 이미 저녁식사가 다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욱여넣으리라. 마지막 날이니깐. 내가 좋아했던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파는 커피집에 갔다.

딸내미는 커피집에서 파는 에그타르트에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하였지만, 나는 모든 게 너무 가득 차서 목구멍까지 답답해져 버렸다. 그래서 웃음을 지을 주름마저 생기지 않았다.


돌아보니,

맛있었다. 퇴사의 마지막 날 먹었던, 그리고 그동안 먹고 마시고 웃었던 시간들이 모두 맛있었다.

즐거웠다. 내가 함께 했던 모든 일들과 이야기들이.


주린 배가 아니어서, 둔감해진 오늘의 감정이 아쉬웠지만.

묵직해진 나와, 짐과, 오늘을 가득 싣고 집으로 향했다.


안녕. 모두들.

그 자리에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 자리들을 지워가겠지.

혹시 본의 아니게 많이 지우더라도 다시 만나면 함께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깐.

너무 서운해마소.


멀리 안 나왔으니 곧 또 봐요.

그때는 조금 더 나온 배. 힘주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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