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팰럿Pallet Apr 17. 2018

일 하는 곳을 옮기다

퇴사라고 쓰고 이직이라 읽는다

자유自由

스물여섯의 여름날은 정말 뜨거웠다. 

강릉 주문진의 소금기 머금은 바람과 비릿한 바다 냄새를 등지고 버스를 탔던 그 순간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동서울 고속터미널에 버스가 멈춰 서서 문을 열었을 때,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서울의 매캐한 매연과 콘크리트. 그리고 아스팔트 냄새가 '여기가 네가 원래 있던 그곳이고 너에게 어울리는 곳이다'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 기쁨은 자유였고, 헛웃음과 나이를 잊게 하는 천진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행복의 순간이었다.


이사移徙

내가 살던 고향은 산촌마을에 가까운 농촌이었다. 엿장수 아저씨가 있었고, 고무 대야 가득 고기를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신문지에 고기를 싸주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친구를 만나려면 걸어서 30분은 가야 했고, 버스는 하루에 여섯 번만 다녀서 읍내에는 웬만하여서는 잘 나가지 않았었다. 그런 시골에서 첫 번째 이사를 했다. 그것도 서울로 말이다.

서울 동쪽 마을에 반지하 두 칸 방을 얻었고, 서울도 생소했지만 반지하 창문 밖으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비가 땅에 부딪혀 콘크리트가 먼지의 내음을 풍겨대던 것도 생경했다. 다섯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자는 것은 시골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도, 열한 살의 나이에 매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어색함이 막 익숙해지도 전에 국민학교 6학년이 되었고, 또 한 번의 이사를 했다. 

3층 높이의 높은 계단을 올라야 했던 2층 양옥집. 참 높은 집이구나 하면서도 반지하를 벗어나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감사한지 몰랐고 한참 크고 나서야 느꼈다. 이층 집에서 중학교 시절을 맞이하며, 이제 창문을 열어도 볕이 든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 집은 다락에 물탱크 통에는 귀뚜라미들이 밤새 파티를 벌이고 있었고, 곰팡이들은 베란다의 화초보다 더 빨리 누나 방의 벽을 타고 자라났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의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었던.. 여전히 반지하와 같은 집이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던 해였나, 새로 반듯하게 지은 빌라의 3층으로 또 한 번의 이사를 갔다. 마치 우리 가족의 성실한 삶과 노력을 말하듯이 우리가 사는 집의 층 수는 점점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은 막 분양해서 비어있었고, 아버지는 특히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집에 대해 소개를 해 주셨었다. 그 집은 지금까지의 집들과 달리, 이름도 있었다. '청운 빌라'. 투박하고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푸른 구름과도 같은 집이었다. 아직도 청운 빌라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함께 따라 들어왔던 햇살이 매우 고마웠던 따뜻한 집이었다. 청운 빌라에서는 행복했고, 지금의 아내도 맞이하게 해 준 집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이사. 내가 살던 서울의 동쪽 마을에서 전혀 반대쪽 서쪽 마을의 다가구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이 곳에는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 첫 신혼집으로 그 집의 이층 전세로 얻었다. 이층 두 칸 방을 얻어 시작한 다섯 번째 집. 그리고 처음으로 독립했던 여섯 번째 집. 그리고 현재 사는 일곱 번째 집까지 왔다.

이사는 설레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맞지 않아 힘들 때도 있다. 때로는 아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옮겨왔다가 뜻하지 않은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직移職

어쩌면 이사를 가는 것 같다. 그리고 군대에서 제대를 하듯이, 속박에서 풀려났다는 자유를 얻은 것만 같다.

잠깐의 시간 동안 그 행복감과 설레는 기분 속에서 자신이 동경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몇 년의 경력이 있든, 지금 나이가 몇이건 간에 이직이라는 것은 거의 평행한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퇴사도 이직도 탈출구가 되긴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내가 예전의 이직과 이번의 이직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번 이직은 참 두근거린다. 부담감의 두근거림이 아니라, 잘 하고 싶다는 두근거림이 있다. 옮길 회사의 직원들이 공유하는 블로그와 책들. 그리고 이야기들을 맞이했을 때, 내가 도움이 되는 곳이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달랐을까? 왜 지금까지의 이직과는 다른 느낌일까?

스스로에게 여러 번 자문해 봤는데, 뭐랄까..

정말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옮겼던 것 같다. 이번에 옮기는 집은 전세가 아니라 매매로 들어간다는 기분으로 말이다. 집을 알아볼 때 동네를 사전 답사하고, 커뮤니티나 부동산에서 정보를 얻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동네의 분위기를 익히며 그 동네에 대해서 확신이 들어야 이사를 하는 것처럼. 정말 내 집을 산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알아봤던 것 같다. 

만약 이사를 할 때 이렇게 알아보지 않았다면, 아마 당신도 금세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암튼, 그렇게 나는 일하는 곳을 옮기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