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팰럿Pallet Apr 16. 2018

주말 아침

아주 흔한 일상의 단편

밤사이 침실을 가득 메운 텁텁한 숨이 가득 찬 공기와 페브릭의 먼지 향이 뒤섞인 아침.

커튼 사이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고, 강마루를 터덜터덜 밟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딸내미 일어났네."

눈을 비비며 이불을 젖히자, 침대에서 밤새 머물러있었던 온기가 나보다 빨리 일어섰다. 발을 내디뎌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던 슬리퍼를 찾아 신고 딸내미에게 다가간다. 딸은 말이 없다. 말이 없이 나왔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문도 꼭 닫고. 


똑똑 노크를 두 번 하고 얼굴 반쪽이 들어갈 만큼 문을 열어보니, 창문을 바라보고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머리를 빗고 있다.

아침에는 말없이 자기 방에 앉아 머리를 빗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덟 살 여인네. 머리를 빗는 모습은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익숙한 몸짓과 행동들에서 내가 있고, 또 내 아내가 있다. 

"아침 뭐 먹을까? 토스트? 바나나? 주스 만들어줄까? 아님, 고구마?"

머리를 다 빗은 딸내미는 쪼르르 내게 다가와 불룩한 내 배를 쿠션 삼아 푹 안긴다.

"토스트."

짧은 한마디에 고개를 숙여 씨익 웃어본다.

배에 얼굴을 비비다가 이내 눈을 비비며 거실 책장 쪽으로 걸어간다.

아직 아내는 침대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하고, 딸내미는 엄마가 늦게 일어날걸 예감한 듯이 만화로 가득한 책을 한 권 꺼내서 소파에 앉았다.

난 토스터기에 빵을 넣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놓고 소파 옆의 창문으로 다가가서 아침을 열어본다.

얼마만의 깨끗하고 청명한 아침인가. 요 며칠 동안 스모그와 황사로 창문을 열어도 연 것 같지 않던 히뿌연함에 내 얼굴도 찌푸려졌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쾌하다. 

"에이 추워"

아내가 일어났다. 투덜거리며 나오면서 내 뒤통수에 한마디를 구겨던진다.

"일어났네."

두 팔을 벌려 다가가니 피한다. 그때 토스터기에서 빵도 퉁하고 튀어나온다.

딸내미는 토스터기의 부름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책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와 앉았다. 

나는 접시에 빵과 함께 땅콩잼, 그리고 아까 꺼내 놓은 물병에서 구수한 보리차 한잔을 따라 딸내미에게 가져다준다. 나도 남은 토스트 한 장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사과를 꺼내어 자신의 아침을 준비한다.

많은 말과 이야기로 채워지진 않아도, 익숙하게 서로를 교차하며 시작하는 주말의 아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고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대의 문턱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