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하기에 더 좋은 취미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산책 독서'라고,
새롭다기 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아무런 생각 없이, 또는 많은 생각을 떠올리며 산책만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내 머리 속의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것보다, 누군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으며 걷고 싶은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날 갑자기 누군가 나와 함께 걸어주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 걷는다 해도 산책이 주는 고요한 위안을 놓치고 싶지도 않다.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겠지만, 이렇게 매우 까다롭게 쉼을 느끼고 날이 있다.
산책 독서는 그런 날 적합하다.
때마침 오늘은 그런 여유가 허락된 날이었다.
주말에 미루기 쉬운 집안일을 하나하나 끝내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1시.
시원한 보리차를 보온병에 담고, 노트와 볼펜. 그리고 가벼운 책 2권을 에코백에 담으면 준비 끝.
산책 독서의 준비도 간단하지만, 그 장소 역시 특별할 필요는 없다.
나는 주로 집 주변의 동산을 택하는 편이다. (집 주변엔 작은 산들이 많고, 요즘 트렌드인지는 모르겠으나,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산길이나 오솔길이 잘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평소에 보기만 하고, 가보진 않았던 앞 동네 낮은 산을 방문했다.
산책 독서에서 이 점이 중요한데,
택하는 산은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책보다는 오르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이거 너무 쉬운 산 아니야? 등산복이 민망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의 산이 좋다.
당연히 복장도 등산복 근처도 가면 안된다. 그냥 동네 산책 나가는 복장이면 충분.
그렇게 너무 높지 않은, 주변이 조용한 산길을 걷다가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책을 읽는 거다.
산이 없다면 공원도 좋고, 천변도 좋다. 저마다의 취향이 있을 테니. 그저, 본인의 책 읽기에 적합한 백색소음 OST가 받쳐줄 수 있는 곳이면 될 것 같다.
마침 적당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를 찾았다.
이제 벌써 9월. 구름도 세탁한 듯 새하얗고 하늘도 잘 닦아놓은 듯이 말끔한 하늘 색깔을 띠는 날이다.
숲 속은 더없이 조용하고, 역설적으로 풀벌레 소리로 시끄럽다. 조용하고 시끄럽다는 표현은 이렇게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숲에서나 쓸 수 있는 표현 같다.
책 1권을 다 읽었다. 시원한 바람을 담요처럼 껴안고 다리를 쭉 뻗었다가, 다시 접었다가. 하늘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모기를 예민하게 쏘아보았다가. 그렇게 딴짓을 해도 책 1권은 금세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책을 집중해서 잘 읽는 편도 아닌데, 숲은 나를 그렇게 만든다.
앉아서 읽다가 좀 허리가 아프면 천천히 걸으며 읽어도 좋다. 등산로가 아닌 이상 주변에 사람들도 거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걷는다고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민망하게 넘어지는 일도 없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숲에 있었는데, 먼 곳으로 혼자 여행을 나온 듯이 낯설지만 편안하고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마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왠지 나에게 잘 맞는 독서 방식을 찾은 것 같다. 사계절 취할 수는 없겠지만 책이 손에 잘 잡히고, 눈에 잘 들어오는 가을이라면 한번쯤은 시도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