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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한 대학원 졸업생, 코바늘을 배우다.

by 야자수

삶이 영화로 가득찼던 20대를 보내고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31살이 되어있었다. 나에게 영화는 종교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현실이라는 땅에 발이 닿아버린 나는 더이상 좋아하는 것을 쫒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어떤 고독으로 가득 차 있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영화와 책을 보면서 삶을 위로하며 살아 나갔고 입시를 거쳐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리고 나와 비슷하거나 여러 다른 이유들로 영화과 진학을 결정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치열하게 영화를 찍으며 졸업을 하였다.


영화과이지만 다큐멘터리 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조금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과 졸업 후에 방송 다큐멘터리팀과 영화 다큐멘터리팀에 조연출로 일을 하였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단순히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영화 제작과정 중 후반작업, 편집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The Cutting Edge The Magic Of Movie Editing]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내가 훗날 영화편집실을 운영하겠다는 꿈의 시작이었다. 편집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편집과정을 경험 하고 싶어 단편영화를 찍었고 극영화보다 편집과정이 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작업에 관심이 많아졌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편집과정이 극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극영화는 명확한 시나리오와 계산된 촬영본으로 관객의 흥미와 몰입을 위해 커팅포인트와 사운드 효과들을 고려한 감정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 처럼 수많은 푸티지들을 하나하나 엮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리듬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이후에 레이어를 쌓는 것처럼 더 겹이 있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음악적인 요소가 더 중요한 작업을 하기보다 이야기를 구현하고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좋아했던 것이다.


조연출 생활을 이어나가던 28살의 나는 곧 서른이 된다는 사실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뭐가 그렇게 조급하고 힘들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더 배우고 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미뤄뒀던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영화과 편집전공에 입학하여 2년을 꽉 채우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하기 두 달 전, 학부 시절 아는 선배가 편집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편집전공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편집기사로 잠시 일해달라는 연락을 했다. 일 하는 동안 너무 좋았다. 영화는 아니고 드라마 편집이었지만 KBS와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드라마였고 이야기나 연출도 재밌어 4개월 반정도 두 편의 드라마 가편집을 끝내고 계약은 종료 되었다. 편집실 마지막 날 나의 작업을 보조해주던 어시스턴트 수정씨는 나를 만나 즐거웠다는 말이 적힌 편지와 함께 코바늘로 만든 크로와상 키링을 선물로 주었다.


늘 작품별로 계약이 진행되었던 프리랜서 생활이 대학원을 졸업하고서도 이어졌고 대학원 입학 전처럼 어떤 다른 곳에서 일해볼까 하는 설렘보다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고 결국 나를 덮쳤다. 만들어지는 작품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프로 편집기사나 왕성한 편집실들도 일을 많이 쉬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편집실을 창업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럼 구직을 해야겠다. 내 전공을 살리고 내가 지금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력으로 콘텐츠 PD를 뽑는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 서류는 넣는 족족 떨어지고 면접을 봐도 편집을 공부한 대학원이 내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공부하고 관심있었던 분야로 쌓았던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직관적인 수익을 내는 포트폴리오가 아니었고 사회가 이야기하는 콘텐츠와 내가 해왔던 작품들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나가 구직활동을 하던 나의 가방엔 크로와상 키링이 대롱대롱 달려있었고 코바늘을 가르쳐주겠다는 수정씨가 생각났다. 이야기도 나눌 겸 오랜만에 수정씨에게 연락했고 나는 코바늘을 배우기 전에 유튜브로 혼자 코바늘을 예습해서 만나게 되었다. 쉼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편집을 했던 손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공이 되기도 했고 컵을 올려놓을 수 있는 코스터가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을 나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신이 났다.


편집을 하면 그래도 돈은 벌었는데.. 뜨개질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동안 어떤 회사에서 얼마를 벌면서 어느정도 일하면 이직하며 성장하자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해왔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고 내가 그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가 나에게 맞는 회사를 여는 게 정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내가 30대가 되어 다시 마주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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