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진학 전에도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소속되어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고 영상 작업을 통해 사람과 삶을 이해하고 말하는 방식을 계속 해 나가고 싶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의 연출전공을 하지 않고 영화 편집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아직까지도 편집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망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잘 모르니 자신감도 없는 것 같아 공부하고 싶었다.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지만 말로만 구하고 내것이라고 원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 내가 직접 어떤 이야기를 개발, 발전시켜서 세상에 메세지를 전달해야겠다 하는 사명감은 약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품 하나를 연출하고 나면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 같은 무기력한 느낌도 싫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속적인 일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4.5개월동안 드라마 2편의 가편작업을 마치고 프리랜서 계약은 다른 별다른 이슈 없이 종료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사히 작업을 완성하고 마쳤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 같은데 이번엔 달랐다. 다른 작업이 없는지, 정규직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들, 계약을 이어가는 방식들에 대한 대화를 적극적으로 나누었다.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서, 내 손에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작업을 너무 오래 쉬고 싶진 않아서였다.
편집실의 사정도 이해가 간다. 새로운 드라마 작업 의뢰가 들어와야 나와 같은 편집 작업자들이 투입되는 형식이어서 당장 일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 편집실 선배는 나에게는 다음 작업이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며 다른 알바를 하고 있되 너무 몸이 고된 알바는 하고 있지 말라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물었고 선배는 몸이 너무 망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편집실에 앉아 하루종일 편집을 하고 있으면 허리와 어깨, 손목에 통증이 온다. 그런 것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알바여서 하지말라는 말이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길 바란다.
나와 작업을 같이 하던 어시 수정씨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수제 코바늘 작품과 편지를 선물해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코바늘을 연습했다. 한 코, 한 코 떠지는 실들과 그것을 엮는 내 손은 편집실에서 한 키, 한 키 누르며 작품을 만들어가던 느낌을 연상시켰다. 결국 결과물은 탄생하는 것, 그리고 편집실의 작업처럼 타의에 의해 끝나지 않고 나의 의지로 작업물 만드는 것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뜨개를 하고 있는 이유였다.
작은 코스터들을 떠보았다. 울퉁불퉁 우굴우굴. 내가 보았던 평범한 코스터 같지 않게 가장자리들이 둥글둥글 말려버리는 코스터들. 나중에 알고보니 다 뜬 코스터들은 넓직한 판에 핀셋으로 고정시켜 빳빳하게 펴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세탁이나 물에 푹 적셔 건조하거나 다림질을 하는 후작업들을 통해 평평하게 만들어지는 거였다. 그런 작업을 귀찮다고 건너 뛰며 타협하다보면 결국 원통형으로 말리는 코스터가 쌓이게 된다. 후작업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어도 안하는 나처럼 말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흔하게 나오는 버섯 키링, 모자 키링 등 여러가지의 키링들을 만들어보았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지는 작업물들이 귀여웠다. 내가 시간을 쓰기 위해서, 그리고 귀여움을 느끼기 위해서 라는 목적을 가진 코바늘 작품들은 늘어갔고 어딘가에 올려놓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선물해주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뜨개실 넣는 커다란 봉투에 같이 넣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나중에 코바늘로 키링을 만들어 팔 수도 있을까, 작업물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정도로 실력이 얼른 늘면 좋겠다. 처음 성장하기 시작할 때 자신감이 가장 크다는 말이 있듯 나는 편집실의 계약 만료와 동시에 뜨개라는 취미를 다시 가질 수 있게 되었음에 작은 기대가 부풀었다.
모서리가 동글동글 말린 코스터들,
초보자의 손에서 울퉁불퉁한 라인이 우습다.
강아지는 닥스훈트 책갈피인데 손으로 잡고 있지 않으면 뒷 몸통이 머리쪽으로 둥글게 말려 올라간다.
코바늘은 일정하게 힘을 분배해 작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