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로 완성되는 작은 작업들을 공유하고 싶어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대바늘 스트링백팩을 똑같이 시도해본 사람이 블로그를 만든 것을 봤는데 왜 그 길고 노력이 담긴 과정들과 결과물을 공유하지 않고 나혼자 만들어놓고 숨겨놓았을까하는 회의가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인스타그램 돋보기 창을 열면 내가 보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자조적이고 자극적인 숏츠들이 난잡하게 쌓여있었는데 뜨개 계정을 만들고 뜨개 인스타그래머들만 팔로우를 하고나니 내가 얻고 싶은 뜨개 정보들만을 올리는 계정들이 내 알고리즘을 채웠다. 생각해보면 어떤 경제 관련 인스타를 운영하는 분은 경제학 공부를 위해 계정을 새로 파고 관련된 정보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변화하는 AI알고리즘의 세상에 다시금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내 전문 분야는 영화, 드라마 편집이지만 단편 영화 연출과 장편 작업들을 한 이력이 있어서 영상 PD를 뽑는 곳에 여럿 지원을 했었다. 30군데 정도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고 면접을 보아도 회사와 직무에 맞는 대답을 하기 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위주로 얘기했던 게 탈락 원인이었던 것 같다. 면접준비와 실제 면접 때 내 대답이 그렇게 허술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면 아무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편집 분야에서 일을 구하기란 무조건 인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가 이전 편집실에서 일 한 것처럼 작업이 있는 편집기사들이 가편집을 할 지인들에게 수소문해서 구하는 것밖엔 없다. 허무한 마음이 기계적인 이력서 작성과 기계적인 지원을 낳았고 그것이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한 숏폼 드라마의 편집자를 구인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내가 학부에 재학중 10년 전쯤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웹드라마처럼 요즘엔 숏폼 컨텐츠가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숏폼을 편집하면 최저시급의 반의 반도 안되는 단가로 작업 의뢰가 들어오곤 했다. 프리랜서가 아닌 인하우스 편집자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현재는 프리랜서로의 작업도 이어지지 못하고 구직활동을 한다는 명분이 있는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했다.
3차의 면접을 끝내고 나는 편집자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구직활동을 이렇게 갑자기 멈춰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각보다 빨랐던 2개월만의 합격 연락은 많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마구 생겼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싶어서 편집전공을 선택한 나는 예전에 웹드라마를 싫어했듯 현재의 숏폼 컨텐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일이 없는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 해줄 수 있는, 그러면서 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20대 였다면 냉큼 이 일을 해서 경험도 쌓고 돈도 벌어봐야지 했었겠지만 30대에 오히려 조급함이 덜어진 상태에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하기 위해 아직 연습이 필요하고 이 회사가 나에게 좋은 연습 과제들과 돈을 준다고 생각해야겠다.그리고 구직을 해도 후련한 느낌이 없었던 것은 내가 취업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고
일을 하면서도 뜨개 인스타그램을 이어나가며 취미 겸 부업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하며 잘 지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하지 않게,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한다는 것에 여유를 가지고 이후에 내가 돌아볼 수 있는 발자취를 하나씩 남기는 작업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