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Jul 22. 2019

엄마는 힘들게 일하지 않는다고?

감정노동자와 육체노동자의 중간쯤 되는 교사라는 직업

 텔레비전에 청소일, 식모일 등을 해서 자녀들을 어렵게 키운 엄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딸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도 나중에 엄마가 힘들게 일해서 너희 키웠다는 거 알아줄 거지?"


 그러자 우리 딸 하는 말이

"엄마는 힘들게 돈 버는 거 아니잖아. 저기 나오는 아줌마처럼 청소하고 남의 집 일하고."


 갑자기 내 말이 속사포처럼 빨라진다.

"엄마가 힘이 안 드는 일을 한다고? 엄마도 학교 가면 청소해. 애들이 청소를 깨끗이 못 해서 내가 다시 한다고. 그리고 하루 종일 서서 수업해. 오후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부어. 게다가 교재 연구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줄 알아?


 또 감정노동도 해. 학부모 중에는 교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고 학부모에게 대들 수도 없어. 우아하게 참아야 해. 애들은 또 어떻고. 교사 약 올리면서 한 대 때리도록 유도하는 애들도 있어. 핸드폰 꺼내놓고 말이야. 신고하면 교사가 무조건 감옥 가는 줄 알아. 무슨 말만 하면 신고할 거예요. 하는 애들도 있어.


 나 아는 선생님은 애한테 머리 끄덩이를 잡혀서 한 움큼 빠진 적도 있어. 그 뒤로 한 달이나 휴직했어.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서. 전에 있던 학교에선 학생들 보는 앞에서 학부모가 교사 따귀를 때렸어. 그런데 학부모는 처벌도 안 받았어. 교사가 만약 학부모 따귈 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도 전에 학생이 책상을 던져서 허벅지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었잖아.


 교사들 중엔 우울증이 와서 상담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대. 엄만 또 퇴근을 일찍 하니까 집안일도 다 해야 해. 아빤 엄마가 일찍 오니까 집안일해놓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우린 임팩트 있게 일 한다고. 하루 종일 말하는 직업이 얼마나 진이 빠지는 줄 알아? 우리가 한 시간 일하는 노동 강도가 남들 세배는 될 걸? 특히 1학년 애들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 한 명 한 명, 몇 번씩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주어야 해. 완전 기가 빨리는 직업이라고."

말하다 보니 내가 거의 울기 직전이다.


 남들 보기엔 그저 애들 가르치는 게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진짜로 기를 쏟아붓는 게 교사란 직업이다. 게다가 교권이 추락한 지 한 참되었다. 어느 땐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 건지 헷갈린다.


 일의 성격으로 보자면 사무직보다 노동강도는 세고, 감정노동자보다 감정노동은 덜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에 못지않을 때도 있다. 게다가 아파도 제 때 쉴 수가 없다. 학생들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심한 몸살감기가 오래간 적이 있는데 이때 학예회 기간이랑 겹쳤다. 학예회 연습 등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기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사실은 이런 것보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일이 참기 힘들다. 내가 새내기 교사였던 시절에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교대를 졸업하고 2년 있다가 교사 선발시험제도가 생겼다. 난 거의 막바지 자동 발령 세대였던 셈이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강화도 앞 군사 분계선이 있는 곳이었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는데 마을 전체에 젊은 남녀는 한 명도 없었다.


 처음 발령받아서 학교를 찾아가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처음 직장이라 옷차림에 꽤 신경을 썼다. 의상실 하는 고모가 맞춰준 무릎까지 오는 허리가 잘록한 마 원피스(가슴은 브이자로 답답하지 않게 파여있는)에 빨간 에나멜 구두, 그리고 손톱에는 까만 매니큐어를 칠하고 갔다. 화장은 거의 신부화장 수준이었다.


 가장 중요한 헤어는 허리까지 오는 길이에 뿌리 파마를 했다.(큰 맘먹고 이대 앞에서 비싼 돈 주고 머릴 했다. 그때 뿌리 파마란 게 처음 생겼다.)

그 당시 내 모습을 본 그 시골학교 선생님들의 표정이 상상이 된다.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회식하러 가서다. 여선생님들이 내 옆에 아무도 앉질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동떨어져 앉았다. 나중에 말해주었는데 내가 보통애가 아닌 것 같다고 다들 수군거렸다고 한다. 처음부터 자기들이 기선을 제압하자고. 옷차림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센 캐릭터였나 보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단발령'을 통고받게 된다.(무슨 개화기도 아니고) 알고 보니 발령받은 날 내 패션과 헤어는 교장선생님에게 꽤 충격이었다.


 이때 교장선생님은 그나마 '신입이' 우대 차원에서 대리인을 이용하셨다. 나이가 제일 많은 여선생님한테 내가 알아듣게 말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먼저 머릴 짧게 자르고 파마를 풀 것, 무릎길이였던 치마도 너무 짧으니 긴 걸로 입고, 매니큐어를 지움은 당연하고 구두도 무채색으로 바꾸라고.


 그런데 여 선생님은 내가 상처 받을 일이 두려워 한 달이나 버틴 것. 전형적인 반골기질인 나는 더 짧게 입고 머릴 더 기르고 싶었으나 여선생님이 심문받을 게 뻔했다. 그래서 과감한 변신을 했다. 중학생 때 머리처럼 일자 단발로 싹둑 자르고, 치마는 거의 이불 수준이어서 학교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다. 또한 화장은 거의 안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반응했다.

"선생님. 왜 화장 안 하세요? 옷은 전에 입던 게 훨씬 예쁜데." 하면서 말이다.


 교장선생님의 큰 그림은 이거였다. 여교사들이 구한말 신여성처럼 입는 것. 즉 위아래 누렇거나 흐끄므리한 빛바랜 색 투피스 정장. 치마는 불경스러운 종아릴 다 덮어야 하고, 윗도리는 어벙벙해 보이게 큼직할 것.


 딱 그렇게 입고 간 적이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무척 흐뭇해하셨다. 정작 나는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날아간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머리랑 옷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까? 하면서.


 지금은 여교사 복장이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아직도 지역마다, 또 관리자마다 눈치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교사라는 직업은 보기보다 힘들다. 내가 교사 그만두고 이것저것 하다 와서 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 단순노동자보단 약하지만 노동량이 꽤 되고, 감정노동자보단 덜 욕먹지만 감정 상하고 속 썩을 일 많고,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는 직업이다.



 괜히 심술 나서 써 본다. 내가 고생하는 거 꼭 자식한테 인정받아야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 편해 보인다는 게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때는 옷도, 화장도, 머리도 내 맘대로 못하는 직업이었는데.


 그나마 교사라는 직업의 최강 장점이 하나 있다. 일 년의 4분의 일을 쉰다는 것이다. 그 방학이 내일로 다가왔다.



작가의 이전글 음식으로 향수병을 치료한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