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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24. 2019

결혼은 '빚진' 짓이다

결혼이라는 대형 구매 사건 후, 우리는 평생에 걸쳐 그 할부금을 갚는다.

얼마 전 유명 연예인 부부 이혼이 큰 이슈였다. 둘 다 멋있고 예뻐서 대한민국 수많은 남녀 가슴에 대못을 박고 결혼하더니 결국 헤어졌다.


기사를 보고 유추해보니, 둘이 같이 산 기간이 얼마 안 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있었내가 보기에 결혼은 '빚진 짓'다.


미래에 어떤 꽃을 피울지 알 수 없는 사람과 평생 함께 살자는 것은, 마치 신용카드로 고가의 물건을 덜컥 사버리는 것과 같다.


결정는 '협조자'들이 있다.(공범자들인가?)


고작 2, 3동안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 호르몬'과 특정 식물 포장지(콩깍지)다.  눈과 호르몬이 빚을 지고 우린 일생을 다 바쳐 빚잔치를 한다.


문제는 구매 결정을 후회할 수 있다는 것.


결혼시기가 늦어지고 있지만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다. 인격이 완성되기엔 이른 시기다.


인생을 '결'로 봤을 때 '기' 후반이라고 할 수 있다.


'승' 배우자와 같이 보내게 되는데, 이때까지도 성격이나 치관 둘 다 어설다.


이 어설픔에 실망해서 조기에 반품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이 경우 그 뒤로 일어날 화려한 '승'과 안정적인 '전', 모든 윤곽이 드러나는 '결'을 볼 수 다.


그 결과, '알고 보니 참 괜찮은 남자였네.' 하고 후회하면서 무릎을 칠 수도.(다양한 컨디션에도 내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다. 나중에 무릎을 치면서 억울해할까 봐.) 


나는 모의'무릎치기'를 이미 경험해 봤다. 결혼 전 한 남자가 따라다녔다. 원래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는 법. 하지만 커도 너무 큰 거다.(수백억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방송에 나오더라는.)


그냥 쿨하게 "까짓 거 돈이 뭐가 그리 중헌디." 하고 만다. 기까진 괜찮다.


그는 나랑 만나도 말이 없어서 답답했다. 전화를 걸어서도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다. 그러려면 왜 전화를 했는지.


그런데 방송에선 인터뷰를 너무 잘하는 것이다. 하는 일이 말을 잘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그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위축되는 스타일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 남편은 그 당시 위축은커녕 내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했다. 가히 나쁜 남자 포스.(혈액형도 B형이다.)


당시 남편을 사귀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가 대놓고 밥을 먹던 식당 아주머니가 다릴 놓았다. 같이 밥을 먹는 모 처(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에 있는 누구가 나를 보고 소갤 시켜달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데도 아직 결혼한 건 아니잖? 하면서 딱 한 번만 만나보라는 것이다.


하긴 그냥 만나만 보는 거야 뭐. 하면서 만났다.(아주머니 그 사람 하도 부탁을 니 귀찮았나 보다.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주시면서 간절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양다리를 걸치게 되었다.(나처럼 덜렁대면 양다리는 못 걸친다. 남자들 이름을 바꿔 부르질 않나, 다른 사람이랑 본 영화를 같이 봤다고 박박 우기질 않나.)


 시작되었다. 남편은 이유 없이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그 사람은 내 앞에서 이유 없이 떨고 앉아있고.(나중에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에 비해 찌질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 말 주변이 없고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는 방송화면 낯익은 얼굴이 나다. 엄청난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그가 속한 집단 이름이 유명해서 알아보니 그 사람이 맞았다. 그 후로 텔레비전과 잡지 등 그가 여기저기 나오니 미치겠다. 인품은 또 어찌나 훌륭해 보이는지.


나는 당시 20대 후반이었다. 남자의 인품을 먼저 본다든가, 수백억 대박을 칠 사람인 줄 미리 알아보는 게 어려웠다.


20대에는 누구나 돈이 없고, 인격이나 성격이 미완의 상태다. 우린 그 미완성품을 단 한 번에 결재해서 구매하는 것이다.


결혼은 이미 커다란 빚을 안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누구나 이때 자기 한도를 다 끌어모아서 카드로 긁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 할부금을 갚는다.


비록 큰 무리는 했지만 그 물건이 괜찮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할부금 갚는 일이 보람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불량품이었을 경우 반품하는 경우도 생긴다. 반품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할부금 갚는 일이 적어도 의미 있게 힘들어야 하니까.


이 한 번의 구매 결정에서 누구나 자기가 한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과연 제대로 알고 하는 결혼이 얼마나 될까? 10년 연애해서 결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달 뒤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기도.


게다가 '결혼'이라는 '대형 구매 사건'에는 삐끼도 합세한다. 다. 한 때 우린 특정식물의 포장지(콩깍지) 홀로그램에 취한 적이 있다.


결혼을 결심할 때 배우자감 외모는 별론데 인간성이 좋아서, 성격이 좋아서 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만 그렇게 말할 뿐이다. 속으론 이 지구에서 가장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자기에게 왔다고 생각.


하지만 곧 내 눈이 저지른 만행을 만회하느라 법석을 떤다. 남편이 황금비율 몸매였다고 생각했는데, 7도 아니고 6.5 등신이었다니? 하면서.


그 비율을 결혼 전으로 되돌리느라(?) 이 옷 저 옷 사다가 입혀본다. 신체가 무슨 고무줄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엄청 살이 쪄서 실제로도 결혼 후 비율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건 좀 슬픔.)


눈의 만행 말고 한 때 잠깐만 뇌에서 분비되던 화학물질을 규탄하기도 한다.(그 호르몬 때문에 우린 가상현실 속에서 평생 살 예정인 적도 있었다.)


사랑하면 됐지, 돈이 뭐가 요해.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고 카페에 둘이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 돈이 없으면 조금 먹고 조금 배설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경제관념은 무시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뭘 하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다. 돈문제는 다른 것에 비해 빨리 무너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좀 못 먹고 못 입는 것은 괜찮은 데,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못 사줄 땐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지기도.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이미 내 아이들 얼굴을 본 이상.


혹시 아이들 태어나게 하기 위해 수많은 공범자들이 공모한 것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공범자들이 뚫지 못하는 철벽남, 철벽녀들도 있다. 평생 빚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인생을 퍽 계획적으로 산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체크카드만 쓴다. 결혼마저도 빚지지 않는다.


50이 넘어서 결혼한 친구가 있다. 전처소생이 있긴 하지만 이미 다 컸다. 나이가 들어서 한 첫 결혼인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남편은 돈도 많고 잘해주고 건강한 사람이다.(생각해 보면 돈이 많으면 잘해주고 건강하기가 쉽다.) 대신 친구 나이가 너무 많아 자기 아이를 낳긴 힘들다. 하지만 원래부터 아이들은 딱 질색이라 괜찮다고 한다.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이 다르다. 그리고 모든 걸 충족시키는 결혼은 없다.


무엇이 부족하든 무엇이 충족되든,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만족시켜주는 결혼이 가장 잘 한 결혼인 것 같다.  그 외 부분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반품했다가 여기저기서 좋은 물건이라는 후기가 넘쳐날까 봐 주저한다. 게다가 가까이서 오래 같이 살다 보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로 볼 때 결혼을 잘(?) 한 나.


오늘 저녁 무슨 찌개로 그 할부금을 갚을까? 몇십 년 전 충동구매한 물건을 위해.


희망을 품어본다. 비록 내 눈과 호르몬이 진 빚 덕분에 평생 할부금 갚느라 허덕이지만, 가 참 좋은 물건을 샀다고 느낄 날이 온다고.


먼저, 거 내가 편보다 씬 더 멋진 물건되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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