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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an 08. 2020

영화 '기생충'의 골든 글로브 수상을 축하하며

계획은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다.

유명 패션 매장 공사를 감리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현장의 힘들고 춥고 불편함을 체감했다. 당시 영하 10도였는데 현장 인부들은 방한복조차 변변히 갖춰 입지 않았다.


가장 비참함을 느낀 점심 먹을 때였다. 그들은 그 추위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지 않고 현장으로 배달시켜 먹는 것이었다. 내가 식당에서 드시라고 해도 극구 사양한다. 이유를 물으니 손님이나 식당 주인이 싫어해서라고.

목공이나 도장하시는 분들은 공사현장에서 묻은 먼지나 냄새들이 잘 가시지 않는다. 그 차림새로 식당에 들어서면 다들 눈살을 찌푸리니 마음이 불편하신 거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식사하시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았다. 할 수 없이 나도 쭈그리고 앉함께 먹었다. 어떻게 나만 식당에 가서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가 있을까.





영화 '기생충'을 뒤늦게 보았다. 골든 글러브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안 볼 수가 없었다. 그 유명한 상을 받다니 하면서. 이는 거북이가 토끼들과 뜀박질해서 달리기 상을 받은 결과나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잔치에서 주인공이 되다니.


이 영화를 늦게 보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기생충이라니,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분개한 까닭은 내가 그 기생 층위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숙주 층위에 속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부를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다. 예전엔 부와 가난에 대해 '부와 놀부'식 편가름이 일상적이었다. 즉 부자는 가난한 자의 것을 착취하니 악하다. 반대로 가난한 자는 억울하고 심성이 곱다.


흥부전에서 부모가 주신 재산을 혼자 가로챈 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흥부는 가련한 피해자로 자식을 먹여 살릴 수가 없어 형을 찾아가 구걸을 한다. 부부금슬은 좋아서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적어도 출산  '계획' 하지 않는다.


기생충에서도 계획성에 대해 한다. '무계획이 답'이라고. 이 세상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으니 적어도 상처는 받지 않으려는 것. 


극 중 주인공인 송강호나 부인은 배운 사람이다. 홍수가 나서 집안 살림들을 가져 나올 때 카메라는 비춘다. 대학 전공 서적인듯한 책들을. 또 부인의 메달과 수상 사진들을. 그들은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성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제 흐름의 희생양일 뿐. 


'대만 카스텔라' 사태처럼 말이다. 언론이나 특정 이익집단들의 말이나 글만 있으면 언제든지 사업이 망할 수 있는 세상이다. 파리 목숨인 셈.


반대편에 있는 이선균의 직업이 시사하는 바 있다. 그는 벤처 회사를 운영한다. 돈 많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자신의 머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시대를 꿰뚫어 보는 감각을 지녔다. 문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 말 그대로 '벤처' 인생이다.


'흥부'이라면 달랐것이다. 이선균은 부모가 물려준 건물 몇 채를 가지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한량이고, 송강호는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일용직 노동자로 등장해야 했을 것.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연기력으론 다들 탁월했지민 특히 송강호 부인의 연기가 소름 끼쳤다. 이선균 집에서 양주파티를 하던 중 송강호 부인이 남편을 바퀴벌레라고 놀리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송강호가 테이블을 쓸어내면서 화를 낸다. 아니 화를 척하고 마무리한다. 그때 잠시 부인의 멱살을 잡는데 그 부인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된다. 부인은 이때, 기생 층위 인간들이 지구 상에서 수만 년 동안 지어왔을, 분노, 애환, 모멸감. 고통, 해학, 체념, 공포를 드러낸다. 어쩜 그토록 만 가지 감정을 한 개의 표정으로 담아낼 수가 있는지.


둘째, 송강호가 아들에게 '무계획 철학론'을 첫 번째로 드러내는 신이다. 열심히 '계획'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하는 말.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칭찬인 줄 알았던 것.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그때 엉거주춤하니, 손을 붙이지도 들지도 못하고 서있는 모습은 그 말이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것. 염려와 경고성 말이라는 것을. 그는 아들이 머잖아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예방주사를 살짝 놓는다.


이 장면에서 생각나는 책이 있다. 박준이 쓴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에서 수능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노동자인 아버지가 시험을 말리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아들의 등록금이 걱정이 된다. 그걸 대주려면 몇 날 며칠 일을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네가 벌어서 등록금 라' 하는 배짱도 없다. 하니 희망 고문당하지 말고 분수에 맞게 일자릴 알아보라는 것.


셋째, 송강호의 팔뚝 연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은 아마도 주인 부부의 소파 신일 것이다. 부부는 거사를 치르면서 이런저런 농담을 한다. 그때 송강호에게서 나는 지하실 냄새(가난을 대표하는 냄새)를 말한다. 그가,

'말이나 행동은 선을 넘지 않아서 좋은데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그때 테이블 밑에 숨어서 누워있던 송강호는 참담한 눈빛을 띄다, 띄다, 차마 눈빛을 감춘다.

이는 관객에 대한 배려다. 이선균의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내심 조마조마했다. 송강호의 눈빛이 어디까지 갈지.


우리의 근심을 알아챘는지 그는 팔뚝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그리고 필생의 연기를 한다. 이때 그의 참담한 눈빛 연기는 팔뚝을 뚫고 레이저처럼 쏘여 우리 눈에 상을 맺는다. 어쩌면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가난 분자'가 그의 팔뚝을 타고 넘어온 분자와 더불어 요동치는 건지도.


넷째, 송강호 아들이 주인 아들 생일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때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부러워한다. 어쩌면 다들 갑작스레 연락을 받고  그토록 우아하게 노는지. 그러나 그 여유로움은 기생 층위 사람들의 한방이면 끝이 난다. '지하남'이 칼을 들고 와서 살육을 행하자 우왕좌왕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매우 충실하게 담아낸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묻지마 살인도 가진 자들의 평화로움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이 모두 보는 내내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동물적인 불편함을 뛰어넘었다.

물질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는 듯. 이 영화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은 계단이다. 주인집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현관과 거실,  방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계단들. 또 주인집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송강호 가족이 무사히 주인집에서 탈출하여 건너야 했던 육교 계단들. 그 계단들은 계층을 연결해 주는 고리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우아함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그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물질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 계단은 때론 견고하고 위험해 보인다. 높은 계단을 오르려면 어질어질하기까지 하다. 괜한 고생이니 오르지 말까 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오르는 것이 시간 때우기 식 게임이 아니라 가족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면?


송강호는 살인을 저지르고 지하에 내려가 숨어 살게 된다. 그리고 아들에게  그 사실을 모스 부호로 알려준다. 이를 알게 된 아들은 결심을 한다. 모든 걸 뒤로하고 그 집을 사서 아빠를 살리겠다고.


이 영화는 '부' 단순히 이기적인 사람이 남의 것을 빼앗아 얻은 사악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 준다. 또한 '가난'사회 안전망이 약하면 언제든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상태라는 것.

더 이상 부 자체를 시기하거나 욕하지 말고 또 가난을 게으름의 결과라거나 저주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인류의 부는 지리적인 것 등 외부의 조건에 의해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분세습제도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부의 고리가 예전처럼 견고하지는 않다.


얼마 전 벤처 기업 하던 이웃집 아기 엄마 남편이 하루아침에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 그 엄마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옥바라지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지켜보아야 했다. 평소 머리핀 하나에 50만 원 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꽂고 다니던 엄마였다.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인한 복지국가 실현?

부를 갈망하라. 부도 건전할 수 있다?

가난한 자들이여. 삐딱함을 거두라?

가난해도 가족의 사랑만 있으면 행복하다?


 이 모두일 수도 있고 모두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곱씹어보고, 나로 하여금 인생을 다시 '계획'하게 만든 점은  영화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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