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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5. 2020

식모 언니

이 땅의 수 많았던 어린 언니들

어린 시절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빠가 섬유사업을 하셨는데, 그 해에 짠 옷감이 잘 되면 풍족했고, 옷감의 재고가 많아지면 궁핍한 해가 지속되었다. 풍족할 때엔 우리 집에 늘 '식모'가 있었다. 없어진 지 오래된 말이다. 요즘 말로 치면 가사도우미쯤 되는데 그 당시엔 대부분 식모가 숙식을 했다. 우리 집에 기거하던 식모 언니는 총 서너 명 정도인데 아주 어릴 적 기억은 나지 않고, 내가 10대 초반이었을 당시 있던 언니가 기억난다. '분이' 언니다.




당시엔 시골에서 막상 상경했으나, 직업을 못 찾은 10대 어린 소녀들이 많았다. 또는 공장에서 낮은 보수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못 견디고 도망을 나와 식모살이를 시작하거나 시골에서 직접 취직되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벌써 4, 50년 전 일이다. 당시 시골에는 소작농 개념도 살아 있었고, 노비 비슷한 것도 있었다. 자유가 억압당하지는 않았지만 재워주고 먹여주는 대가로 궂은일을 하는 머슴이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그 머슴들은 대를 물려받아 대갓집에서 먹고살았다. 그 머슴들은 또 다른 집 머슴의 딸들과 결혼을 했다. 대부분 씨족사회로 이루어져 있던 시골에서 양반이나 서민이라는 개념이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있던 언니 중에는 머슴이 결혼하여 낳은 딸이 있었다. 그 언니 이름은 분이(가명을 썼다. 혹시 이 글을 볼지도 모르므로)였다. 그 언니는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 당시 여자들에 비해 덩치가 아주 아주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손이 컸다. 그 언니는 덩치에 비해 애교가 아주 많았는데 처음 온날부터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처음 일주일은 엄마가 같이 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집안 살림을 가르쳐 주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린 너무도 행복했었다. 그전에 있던 언니가 갑자기 야반도주한 지 한참 동안이나 식모 언니를 못 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빈번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만 해도 식모 언니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잠만 재워주고 밥만 주어도 들어오려는 언니들이 넘쳐났다. 업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무작정 상경'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어린 소녀들이 갈 곳은 별로 없었다. 공장이나 식모 외에는. 하지만 불과 10년여 만에 분위기가 달라져갔다.


아주 어릴 적 식모 언니들은 주인과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일도 드물었다. 대체로 누룽지를 긁어먹거나 남은 밥을 먹었다. 또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 우리 집에서 일일이 아이들을 씻기고 밥 먹이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더 좋은 일자리들이 여기저기 생기면서 갑자기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처음 집에 올 때부터 자기만의 방을 달라고 하거나 식구가 몇인지 물어보고는 식구가 많아서 싫다면서 손사래를 치곤 했다. 우리 집처럼 식구가 많고 고양이 강아지까지 기르는 집은 할 일이 더 많았다. 그러니 멋 모르고 들어왔다가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 언니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언니라 세상 물정을 물랐던 것. 그저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 갑갑한 시골을 탈출했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 마음이 계속되면 좋았을 텐데.


멀리 나가봐야 코딱지 만한 읍내 구경이 다였던 시골 아가씨가 접하게 된 세상은 신기하고 화려했다.  살림만 하고 있기엔 갑갑했을 것이다. 게다가 두세 살 터울로 쪼르륵 있는 아이들 뒤치다꺼리만 하려니 얼마나 부아가 치밀었을까? 게다가 제일 큰 아이는 자기랑 동갑이었다.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 학교 다니고 자긴 하루 종일 일만 하고. 그 언니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만만한 사람을 활용하는 법을 잘 알았던 것이다. 게다가 의욕이 넘치는 사람의 약한 고리를 활용하는 법도.


그 언니는 맞벌이하던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나를 콩쥐 부려먹듯  했다. 그걸 부모님께 말 못 하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다. 그 언니는 종종 마루에 앉아 얼굴에다 오이를 붙이고 있으면서 나에게 집안일을 시켰다, 걸레질, 빨래 등. 그러다가 엄마가 오면 싹 돌변하곤 했다. 갑자기 나에게 잘해주면서 온갖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눈짓을 하곤 했다. '이르면 알지?' 하는 무서운 표정과 함께.


당시엔 물이 귀했다. 동네마다 수돗물이 잘 안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땐 동네마다 물차가 와서 공급을 해주었다. 그때 가정마다 양동이등을 가지고 가서 물을 받아와야 했는데 엄마가 없을 땐 분이 언니가 우리에게 명령을 했다. 양동이를 가지고 가서 물을 떠 오라고. 그러면 그 언니가 무서워서 하나둘 퍼왔다. 그때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 누가 제일 많이 퍼오나 하고. 그리고는 고구마 같은 간식으로 보상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 언니는 불량 청소년의 끼가 있었다. 그리고는 결국 첫 바람이 났는데 하필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였다. 나이도 자기보다 40년은 더 많은 할아버지랑 사귀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낮에는 매일 집을 비우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밥도 없어서 내가 직접 해 먹었다. 그러다 부모님 퇴근할 무렵 직전에 돌아오곤 했다.


그 언니는 우리에게 마치 동화책을 들려주듯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자기 보고 너무너무 예쁘다고 했다는 둥, 그 할아버지가 오늘 자기에게 이 선물을 줬다며 목에 찬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진짜 진주 목걸이인데 아주 값비싼 거라나? 내가 보기엔 문방구에서 파는 가짜 진주 목걸이 같던데.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해선 안 될 19금 이야기를 밑도 끝도 없이 어놓곤 했다. 그 이야길 할 땐 주로 눈을 스르르 감고 뭔가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말이야. 여기서 이렇게 걸레질이나 할 여자가 아니란 말이지.' 하면서 상상의 세계 속에 사는 듯이 보였다. 이 언니는 연기력이 대단해서 부모님이 오시면 곧바로 순진한 시골 처녀로 돌변하곤 했다. 부모님은 그 연기력을 눈치채기엔 너무 바빴고 부모님에게 이르기엔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그러나 분이 언니의 행각은 곧 들통이 났다. 시골에 사시는 먼 친척분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때 집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분이 언니는 또 바람이 나서 나가 있었다. 게다가 그 언니가 우리더러 집안 청소를 꼼꼼히 지시하고 갔다. 우린 시키는 대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


그 광경을 보게 된 친척분이 부모님께 일렀다. 결국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하게 되었고 그 언니는 잘렸다. 지금도 가끔 그 언니가 해준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특히 성적인 이야기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낯 뜨거운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어떻게 어린아이들한테 늘어놓을 수가 있었는지.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그 언니는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 언니는 자기도 잘할 수 있는 걸 갖고 싶었나 보다. 그게 엉뚱한 쪽으로 발휘된 것.


그 언니가 지금 어디 사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리고 분이 언니에게 말해주고 싶다. 언니가 다른 건 몰라도 음식 솜씨는 정말 좋았다고. 언니가 요리를 정식으로 배웠다면 지금쯤 대단한 요리사가 되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언니는 나를 참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다.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버텼을 시간들이. 게다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일은 고달픈 것에 더해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지. 시골에 있는 동생들이 딱, 우리 또래였다. 그러니 우리를 볼 때마다 동생들 생각이 많이 났을 듯하다. 그 스트레스를 우리한테 퍼부은 것이다. 지금은 입주 가사도우미들을 구하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도 있고, 다른 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개인주의 때문에도 그렇다.


분이 언니는 나이가 비슷한 나를 참 많이도 부려먹고 힘들게 했지만 지금은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식모 언니들이 그랬다. 생각만 해도 먹먹하다. 부모를 떠나 낯선 곳에서 자기 또래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던 수많은 분이, 순이들. 자기들도 똑같이 10대의 어린 나이였는데, 학교가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밤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또 동생들 또래만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고.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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