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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6. 2020

솔직함에 대한 보상은 컸다

머릿니 방역에 앞장섰던 엄마

이번 코로나 19에 대응한 한국의 원칙은 무엇보다 투명성에 다. 공개 초기만 해도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안인 데다, 우리나라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중시한 정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부분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는 게 치명적일 경우 무조건 감추려고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감춘 것이 드러날 경우 더 곤란해진다.






상해에 살 때 곤란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머릿니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머릿니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상해엔 당시만 해도 중국 아이들에게서 머릿니가 종종 발견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중국 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던 우리 아이들이 머릿니에 감염되었다.


머릿니 약이 대체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당황하던 나는 해외 구매로 약을 구입해서 하루 온종일 참빗을 이용해서 아이들 머리를 빗겼다. 다른 아이들에게 옮길까 봐 두려워 우리 아이들을 자체 격리까지 시켰다. 영문도 모르는 주변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놀러 오려고 하고 우리 아이들은 놀고 싶어 하고. 그렇게 꽤 오랫동안 머릿니 박멸에 공을 쏟았는데 한번 생긴 머릿니는 계속해서 왕성한 번식력을 과시했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생물체를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도 잠시, 그 끈질긴 생명력에 대항하며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아들과 친하게 지냈던 한 남자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아들이 머릿니에 감염되었으니 우리 아들도 살펴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행하고 있는, '코로나 접촉자 검사'를 받게 한 거다.


그런데 비겁하게도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아들도 지금 머릿니에 감염되어 있고 사실 우리 아들이 옮겼을 확률이 높다고. 만약 우리 아이들이 머릿니에 감염되었다는 걸 알자마자 주변 접촉자 아이들에게 죄다 전화해서 알렸다면? 그러면 그 아이들이 자가 격리하면서 머릿니를 관리했을 텐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한국학교에 머릿니가 순식간에 퍼졌다.


물론 내 추측이다. 다른 감염경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일본 아베처럼 행동했다. 올림픽 강행 욕심에 자기 나라는 코로나 청정지역인 것처럼 말하고 한국은 감염국이라고 말하고. 처음부터 철저히 추적하고 차단하고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지금 일본은 달랐을 것이다.


결국 한국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머릿니가 발견된 아이들은 등교를 자제해달라고 했다. 머릿니 제거 방법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이 모든 과정은 아들 친구 엄마의 행동에 따른 것이다.

그 엄마가 용감하게도 자기 아들이 머릿니에 감염되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한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아들이 왕따 당할 수도 있다. 두고두고 머릿니 감염원이라고 알려질 게 뻔하고.


그러나 그 엄마는 나와 달랐다. 그 엄마는 자기 아들도 어디선가 감염된 것 같다면서 다른 아이들도 감염될 수 있으니 당분간 학교를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아들과 신체 접촉이 있던 아이들을 다 검사해보게 했다. 그리고 머릿니 치료 방법까지 꼼꼼히 알려주었다. 곧 그 엄마 지침대로 가정통신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늘 바쁜 일하는 엄마였다는 것이다. 그 엄마는 전업주부라서 자기 아이가 왕따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나는 없었다. 안 그래도 타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우리 아이들. 게다가 엄마가 일까지 해서 돌봐줄 수 없으니 늘 기가 죽어 있었다. 머릿니 주범으로 왕따까지 당한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나라가 코로나 19 초기, 중국에 이어 감염자 수가 2위였을 때다. 그때 나는 한 인기 유튜버가 올린 방송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빨리 생필품을 사재기하라는 말을 하면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


적어도 내 생각엔 사재기를 해서도 안되고 왕따가 된다는 논리도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우리도 감염 피해국일 뿐인데? 그리고 열심히 물리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왕따가 되는 게 말이 되나? 하고.


결국 그 유튜버는 틀렸다. 우린 사재기를 안 해서 칭찬받았고, 결국 코로나 감염 2위국에서 방역 모범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총선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고난이 수시로 닥친다. 내 잘못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 어떤 일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뭐든 실수했다면 재빨리 사과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면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 그 이상으로 확실한 게 있을까?


총선을 앞둔 최대 위기에서 우리나라, 참 잘했다. 자기 아들의 왕따 위험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밝혔던 엄마처럼.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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