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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8. 2020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 많지만

매사에 '생산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어릴 때 노는 장면을 보면 물건을 종류별로 나눈다. 주로 모양이나 색깔별로 나누는데 과자를 먹을 때도 종종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일이다. 회사에서 퇴근할 땐 늘 미안한 마음에 과자를 사 가곤 했다. 그때마다 과자를 종류별로 분류하기를 즐겼던 아이들.


하루는 '바다 포유류가 먹는 주식' 과자를 사 갔다. 그 과자를 열고는 그냥 먹기가 아까웠는지 또 분류하기 시작했다. 고래 모양, 불가사리 모양 등. 그러더니 오징어 모양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자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 오징어는 친구가 없다고. 과자를 담을 때 숫적으로 골고루 넣지 않는 모양이었다. 랜덤으로 넣다 보니 외로운 오징어가 생긴 듯.





사람들은 각종 제목을 달아서 뭐든 나누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에서도 동쪽, 서쪽(요즘은 다소 사라지는 추세)으로 나누거나 단순히 여자, 남자로 나누기 일쑤다.


나에겐 오래전부터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 성격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바로 '생산자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과 소비자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이다.


즉 생산자적인 사람은 매사에 창의적으로 접근하고 사회 현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지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반면 소비자적인 사람은 한결같은 무책임함을 드러낸다. 사회 이슈에 대해 마치 자기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한 때 '헬조선'이란 말을 무심코 던져대던 사람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불평 거리다.



생산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소비자는 순진하고 단순하다. 순진하다 못해 때론 무책임하고 방해를 일삼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형태가 있다.


가정 안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나뉜다. 가정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살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엄마는 생산자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소비자다. 이를 나누는 바로미터가 있다. 양말을 벗어놓은 모습을 보면 된다. 양말을 손에 닿는 대로 대충 벗으면 뒤집힌 상태가 된다. 그 상태대로 던져놓으면 소비자다. 반면 양말 끝을 손으로 잡고 그대로 벗겨낸후 세탁기 안에 곱게 넣어주면 생산자다. 슬프게도 우리 집에선 유일하게 나 혼자다.


인터넷 논객에 대해서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악플러와 선플러다. 각종 기사나 가벼운 블로그 글 들에까지도 소비자와 생산자적인 피드백으로 나뉜다. 특히 악플러들은 다양한 사회이슈들을 소비하다 못해 배설한다. 선플러들은 그들이 키보드 위에 배설해 놓은 각종 오물들을 치운다.


선플러들에게는 생산자적인 dna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 한 편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수십억의 돈을 들여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만들어낸 걸 안다. 쉽게 평가절하해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비판을 하더라도 생산적인 내용으로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 안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학창 시절 반장을 무조건 비판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정작 2학기에 반장에 뽑히게 되었다. 그러자 1학기 반장보다 일을 못한 것이다. 이번엔 자기가 아이들에게 불평불만을 듣게 되었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가르쳤던 학생 중에 수업시간에 방해를 일삼던 아이가 있었다. 게다가 매사에 불평이었다. 6학년쯤 되면 아이들도 선거에 전략이 생긴다. 이때 아이들은 기지를 발휘했다. 그 아이를 반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그러자 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마다 떠들던 아이가 반장이 되자 떠든 아이들 이름을 칠판에 다. 그러자 교실이 전체적으로 조용해졌다. 그 일을 하는 동안엔 떠들 수가 없으니. 생산자 적인 입장이 되자 달라진 것이다.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물건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소비하는 프로슈머라는 말도 있고, 시민 참여정치도 활발해지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온라인 학습 활동에서 소극적인 학습자에 머물 수가 없다. 인터넷 기기를 활용하긴 하지만 수업을 임하는 태도나 활용방법을 스스로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을 단순히 정치를 소비하는 주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국민들의 청원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n번방 사건 주범 얼굴 공개하라.'는 청원 등은 결과가 곧 반영되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생산자 위치에 오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문화 콘텐츠(K-pop 등)에서부터 전염병 방역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며칠 전 치러진 투표가 대표적이다. 그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코로나 중 큰 선거'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거를 강행했다는 자체보다도 선거의 주인처럼 행동한 우리 국민들.


정치에 있어 단순 소비자에 머물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인다.

'아무리 전염병이 창궐해도 나라 살림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정치를 단순히 소비하지만은 않겠다'

라는 것.


수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언했듯 우리나라가 이제 전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어가는 것 같아 기쁘다. 바로 그 나라의 주인으로서, 사물을 더욱 생산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겠다.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말이다.


나는 특히 교사로서, 난생처음 해보는 '온 라인 수업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니까 조금 부족해도 괜찮을 거야.' 하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온라인 수업 방식 때문에 머릴 끙끙 앓고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쓴 글-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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