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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19. 2020

눌변은 진실해 보인다

눌변이 주는 신뢰감

한 목사님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목사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말을 더듬는 것이었다. 대형 교회의 소위 '스타 목사님'들은 언변이 뛰어나다. 적절한 사례와 유머는 기본이고, 상식에 해박하고 철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풍부한 지식을 말로 풀어낼 줄 안다.


그런데 말을 더듬다니. 말을 더듬으니 자연히 말이 느렸다. 예상대로 교회는 크게 부흥하지 않았다. 교회 개척 시 함께 했던 초창기 멤버들과 그 가족 또 동네에 오래 산 이웃들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있었다. 그 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 진실된 교인들이 다닌다고.

목사님이 설교할 때 교인들은 자는 이 없단다. 다들 목사님의 입 모양만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대신 교인들이 성경책을 찾아 읽으며 설교를 따라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여느 교회 교인보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


무엇보다 교인들이 목사님을 존경한다. 말은 어눌하지만 신앙적인 깊이와 진실됨을 가지고 있어서다. 별 내용 없는 개그 같은 설교에 질린 교인들은 오히려 이런 목사님에 감화받는다고 한다.


보험회사에 다니던 친구는 원래 내성적이었다. 처음 보험영업을 시작했을 때 속으로 걱정했다. 어디 가서 말 한마디 못 하는 성격인데...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업에 나선 친구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웬걸 친구는 승승장구했다. 나중에는 보험여왕으로 등극하기도.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너처럼 내성적인 아이가 어떻게 영업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친구의 말이, 오히려 내성적인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단다.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사람은 고객에게 불리한 보험을 파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는 것.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무서워 많이 울었다고. 하지만 고객들은 자신이 말은 잘 못해도 원하는 자료를 성실히 가져다주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믿고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객들이 덧붙이는 말이, "오히려 말을 못 하시는 게 더 믿음이 가네요." 하더라고. 물론 친구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약관을 다 외우다시피 했다. 생활 정보나 재테크 상식 등을 수시로 보내주고 각종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겨주고. 말만 못 할 뿐 행동으로 부지런히 일을 한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 사람은 일도 잘하고 약속도 잘 지키며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다음은 어떨까? 말을 조금 못 하더라도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과 일은 대충 하는데 말만 뻔지르르 잘하는 사람 중 어느 사람에게 신뢰가 갈까?


당연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여기저기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동영상에는 재치 있는 자막이 있어야 인기가 있다.

여기저기 말의 홍수다. 말도 잘하는 사람인지 말만 잘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회사 입시에서도 이런 부분이 포인트가 될 듯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일은 대충 하는 사람을 뽑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경험상 나 자신이 텅 비어 있을 땐 말이 많아진다. 반대로 내 안이 꽉 차 있으면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내면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서 굳이 내 상황을 말로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 결과 어눌한 사람이 말발 센 사람보다 진실해 보이는 오해도 생긴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요즘 왠지 어눌한 사람이 좋다. 다들 말을 잘하니 어눌한 사람이 특별해 보인다.


대개 남자들은 말주변이 없고, 대꾸하기를 귀찮아한다. 부부싸움의 경우 '따다다다' 쏘아대는 부인 앞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렬히 전사하기도 한다.


어제 집안일 분배 문제로 내가 총알을 발사했다. 그러자 남편이 어눌하게 더듬거리며, "그래도 아주 안 한 건 아닌데... 머리카락도 치우고..."

곧 이어 이어지는 나의 응수, "기껏 머리카락 치운 거 하나 가지고 도와줬다는 말이야?"

그러자 남편이 머릴 긁적거리면서 "아니. 또 뭐더라. 맞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정도..."

기가 막힌 내가 대꾸한다. "세 번이나 한 번이나..."

 

그렇게 쏘아붙이고 나자, 슬그머니 기억이 난다. 방금 남편이 재활용 쓰레기 갖다 버린 게. 그리고 매일 아침 먼길로 돌아서 나 출근시켜주는 거며, 마트 가서 시장 봐오는 거 하며...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말한다.

"에이. 바보. 겨우 머리카락 치운 거만 계속 생각났나 봐. 그것도 청소기 돌린 거라고 말하지, 왜 겨우 머리카락 치운 거라고 하나. 눈에 머리카락이 보이니 청소기를 돌렸는데 그저 머리카락에만 초점을 맞추어 말한 거네. 나 같으면 뻥튀기해서 말할텐데. 항상 축소해서 말하니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남편한테 반한게 바로 이런 거 아니었나? 꿍얼꿍얼 다 말하지 않고 말을 약간 더듬으면서 말하는 거 말이야. 속이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가끔 진심이 뚝뚝 묻어나게 말하는 거. 말하자면 어눌한 말투에 오히려 신뢰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 어쨌든 내가 좀 더 많이 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도와주는 것 같긴 하네. 그래도 계속 밀어붙여야지. 완전한 평등을 위해서."


남편은 눌변이다. 하지만 결국 내 달변을 남편이 이긴다. 이쯤 되면 말을 좀 못 해야 인간적으로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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