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시네요."는 칭찬일까?
고 박지선 님을 추모하며.
유명 여류 문인의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강연에 초대되어 갈 때마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는데 거북했다는 말이다. "실물로 보니 훨씬 예쁘시네요."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참으면 안 되겠다고 느낀 순간 말을 질렀다. "저는 앞으로 제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 외의 것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그러자 이에 정색을 한 담당자가 다시는 강연에 부르지 않더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모에 민감하다. 그 민감성은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인사말, 한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묘사, 때로는 고인에 대한 평가에도 등장한다.
요즘은 자신의 외모를 천운에 맡기지 않는다. 사양을 높이는 데에 기꺼이 피 같은 돈을 지불한다. 이에 자신감이 생긴다면 감사할 일이다. 문제는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다. 작가에게 외모 품평부터 날리는 분위기가.
이런 품평은 남자들에게까지 확대된다. 남자 아이돌 가수들 중 여자보다 더 예쁜 경우도 있다. 내가 20대 시절엔 남자가 화장을 한다거나 몸매에 신경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른들 말로 고추가 떨어질 일이니.
30여 년 전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아 깡촌 학교로 부임하게 되었다. 출근 첫날 교장 선생님이 나를 선생님들에게 소개하시면서 하신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교육청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우리 학교에 궁중 미인을 배정하셨네요. 모두 기뻐합시다. 짝짝짝"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언 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궁중 미인이라니. '그럼 내가 후궁이란 말인가? 내가 후궁급 얼굴이라는? 에이. 이왕 쓰시는 김에 좀 더 쓰시지. 중전마마라고 하면 차라리 나을 것을.' 하며.
그 학교, 아니 그 마을 전체는 고령화 사회였다. 주위에는 인삼밭 밖에 없었는데, 인삼농사를 지으려는 젊은이가 한 명도 없었나 보다. 그 흔한 새싹 그림 모자를 쓴 '영농후계자'조차 없는 동네.
그 동네에선 4, 50대만 되어도 젊은 여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 24살, 대학을 갓 졸업한 아가씨가 왜 이뻐 보이지 않았겠는가. 표현이 다소 외설스럽고 구식이라 느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궁중에서 살기엔 내 차림새가 영 불편했는데.(나는 그 날 내 인생 첫 직장이라 최신 유행으로 치장하고 갔다. 빨간 에나멜 하이힐 구두에 허리까지 오는 야한 뿌리 파마, 짧은 치마의 원피스,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한 기다란 손톱)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마음 한편이 켕겼다. 하긴 처음 본 처자에게 딱히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다지 일을 잘하게 생긴 것 같지는 않고.
위의 여류작가에 의하면 '예쁘다.'는 말처럼 부담 주는 말이 없단다. 사람은 하루하루 늙어갈 수밖에 없다. 앞으론 하루가 다르게 안 예뻐질 게 뻔하다. 다음에 가면 전보다 덜 예쁠 텐데 그땐 뭐라고 할까?
외모에 대한 찬사가 칭찬 인지도 의문이다. 미모의 소유자들은 물려받은 유전인자대로 생겨준 것뿐인데 말이다.
"얼굴이 조막만 하시네요." "다리가 기시네요." "피부가 참 하얗네요." "눈이 엄청 크시네요."
이는 당사자의 과업이 아니라 부모나 조상 덕이다. 그 덕에 숟가락 얹은 사람에게 칭찬은 무슨. 이미 지겹도록 들었을 말에 한 마디 보태는 건 시간 낭비일 수도.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하다. 문제는 칭찬에 중독성이 있어서 다음엔 수위를 더 높여야 충족이 된다는 것.
다르게 칭찬하면 어떨까?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꾼 근육을 보고 그 많은 운동량에 대해, 뽀얀 피부를 보고 관리의 부지런함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 서로 덧없는 칭찬의 그물에서 벗어난다.
중국 상해에서 살 때 일이다. 중국어로는 '예쁘다'는 말을 "표량"이라고 한다. 아주 예쁜 경우 "헌표량"이라고 감탄하곤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하는 말이 그 말이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라고.
왜냐니까 그건 주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많이 한다고. 즉 진짜 아름다운 여자에게 쓰는 표현은 따로 있었다. 그 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우아하고 귀티 난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때 내게 말을 하던 중국인들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중국이 워낙 넓고 사람이 많아서 의견이 분분할 수도. 그래도 그들이 하는 말이 이해되었다. 즉 그들에게 "예쁘다"는 말은 상대방을 낮게 보고 하는 가벼운 말이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얼굴이 작은 것에 대해 왜 칭찬을 하느냐고. 그건 타고나는 신체의 특성일 뿐인데. 머리가 작으면 우월한 인종이라거나 더 건강하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성형강국이다. 압구정역에 내리면 복제인간 같은 여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볼록한 이마, 길고 큰 눈, 눈밑 애교 살, 뾰족한 턱, 하얀 피부, 높은 코, 도톰한 입술. 뭐하나 예외가 없다.
이런 얼굴을 만들기 위해 젊은 여자들이 계돈을 부어가면서 성형을 하기도 한다. 사회 전반적인 외모지상주의다.
어젯밤엔 고 박지선 님의 영상을 보다 울음이 터졌다. 나하고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슬픈지 모르겠다.
특히 그가 강연 영상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자긴 절대로 얼굴에 손대지 않겠노라는. 자긴 어릴 적부터 자기 얼굴이 너무 좋았단다. 자기 얼굴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얼굴이라며. 원래부터 박지선 님의 개그를 좋아했다. 그는 남을 후려치지 않았고, 자기만 튀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얼굴처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적이고 고급지고 자연스러운 생활 유머였다.
그런 유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슬프다. 대신 그와 한 시대를 호흡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당분간 이 땅에 박지선 님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 따뜻함, 겸손함, 지성, 고급진 유머, 높은 자존감. 그녀가 남겨 준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다들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