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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Sep 25. 2020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을까?

과한 개그 본능, 진행 본능이 누군가를 언짢게 한다.

엄혹했던 시절엔 조선시대 유행어도 써먹기 힘들었다. 여기서 '조선시대 유행어'라는 건, 속담의 어휘로 보아 그렇다는 말이다.

'뒤에서라면 나라님 욕도 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서민들이 나랏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속풀이로 했을 것 같다. 하긴 그땐 녹취를 할 수도 없고 sns도 없었으니. 말로는 증거를 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부풀어 오를 무렵, 한 대통령이 통 큰 선언을 했다. 아니, 윤허했다. '자길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전엔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드는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통령을 닮았다고 출연 정지당한 연예인이 있었을 정도.


지금은 먼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대통령을 마음껏 욕하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공인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다. 하지만 공인이 아닌 경우에 코미디 소재가 되는 건 어떨까? 그것도 미담에 대해. 비록 내용이 좋더라도 웃음의 소재가 되면 언짢아지는 게 사람 심리다. 


한 모임이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모인 그 자리에서 유독 금슬이 좋은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뷔페 음식을 한 접시에 덜어 머리를 맞대고 먹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이 모두 수군수군 대며 부러워했다. 


그중엔 별나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한 여자가 큰 목소리로 그 부부를 겨냥하며 말했다. "이 부부 좀 보세요. 얼마나 금슬이 좋으면 여기까지 와서도 떨어질 줄을 모르네." 하면서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부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 말을 한 사람은 말이 많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말의 뉘앙스가 딱히 좋게 들리지 않았다.


그 커플의 여자분은 나중에 사석에서 그때 일을 꺼냈다. 자긴 그때 매우 불쾌했다고. 마치 아이를 놀리듯 해서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나도 다른 이들처럼 웃었다. 그때 우리가 웃은 게 과연 정당한 걸까? 말을 한 사람은 부부의 금슬을 칭찬한 걸까? 아니면 유난을 떤다고 놀려댄 걸까? 그때 웃었던 다른 이들은 뭐가 웃겨서 웃었던 걸까? 금슬이 좋은 게 부러워서? 그렇다면 웃는 게 아니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면 될 일이었다. 


그 부부의 금슬이 좋은 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말한 이의 빈정거리는 듯한, 샘나는 듯한 말투가 웃겨서 웃은 것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말하는 사람의 유머 소재로 쓰인 것이다. 연예인을 소재로 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에 한 연예인은 한 코미디언이 자신의 말투를 희화화해서 말하는 것을 보고 불쾌했음을 토로했다. 결국 코미디언이 공개 사과하기도.


이렇듯 자신이 불쑥 남의 코미디 소재가 되면 언짢다. 자신을 가벼운 이미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특정 연예인을 패러디할 경우 사전에 양해를 구하곤 한다.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고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말이다. 이미지에 해가 되지 않는지 수위조절 하는 것이다. 


내가 한 말을 듣고 사람들이 웃을 땐 기분이 좋다. 누군가를 웃겨주었다는 뿌듯함 때문에. 그런데 내가 소재가 되면 복잡해진다. 사소한 버릇을 말한 것뿐이라도. 오랜 친구처럼 편한 사이라면 모를까 거리가 있는 관계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개그 욕심 내지는 진행본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자주 한다. 내가 그렇다. 특히 과거, '눈치 없던 시절' 들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다.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다. 막상 내가 그 대상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들이다. 


'뒤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라는 속담 뒤에는 아마 이런 말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나라님 욕을 뒤에서 하는 건 나라님이 높은 분이라 무서워서다. 앞에서 하면 잡혀가니. 반대로 앞에서 욕을 하거나 농담거리로 삼는 건 그 사람이 우스워서다. 자기가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길 코미디 소재로 삼았는데 기분이 나쁘다면 대놓고 인상을 쓰는 게 낫다. 민망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라도. 그래야 다음에 또 실수하지 않는다. 그저 우유부단하게 넘어가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다음에 또 그런다. 

대화하는 도중 누군가 소외되거나 불쾌한 표적이 되면 안 된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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