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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Sep 08. 2020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정상화되면 이것 빼고 대화해 볼 작정이다. 가능하다면.

대화하다가 "잠깐만! 이제 그만두죠."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내가 왜 귀한 시간을 낭비하나' 생각이 들게 한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룰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딱 밥맛 말맛이 떨어진다.

그런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나.


1- 교사형

뭐든 가르치려 든다. 일정 기준 이상의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며 멀찍이 앉아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원칙을 준수하려 하고 입만 열면 그 기준을 설파한다. 그 말에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가차 없이 태클이 들어온다. 모든 사람을 자기 제자로 아는 듯한 말투, 제스처를 대하다 보면 어질어질해진다.


2- 엄마형

처음엔 푸근해서 좋다가 조금 지나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다 품으면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 이 세상 모든 악을 다 용납하고 이 세상 까칠함을 다 정당화하면. 그러면 세상은 발전을 멈출 텐데. 아무리 엄마라도 혼낼 땐 따끔하게 혼내고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아야 대화가 살아난다. 이들은 대화중 어떤 악다구니도 다 수용하는 천사표 대화법을 구사하는데, 알고 보면 대화에 성의가 없거나 자신의 '철학 없음'을 가리기 위한 경우도 있다.


3- 나르시시스트형

'기. 승. 전. 자기 자랑'형이다. 진짜 못 봐준다. 이들은 어떤 모임에서든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자기가 대화의 중심이 아닌걸 못 참는 것. 대화 내용은 상관없다. 예를 들면 누가 이효리와 비의 최신 노래 들어봤냐고 하면 들어봤다고 말을 하다가 옆길로 살짝 샌다. 자기가 젊었을 때 이효리 닮았다는 이야길 들었다는 둥, 자기도 요가를 배우겠다는 둥 어쨌든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몰고 간다.


4- 애정결핍형

이들은 애정결핍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인정 욕구가 크다. 그 인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든 물어본다. 누가 예쁘다고 하면 곧, " 정말요? 아이 좋아라. 에이 아니죠? 내 나이에 예쁠 리가 있겠어요?"그래서 진짜라고 하면 "어디 가요? 하고 끝도 없이 칭찬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한 케이스. 이들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한창 질문이 많은 서너 살짜리 아이와 말장난하는 느낌이 들 정도. 이들에게선 돈을 받아야 될 거 같다. 상담료로.


5- 강연가형

그냥 '세바시 강연'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책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많아서 자기 철학이 확고하다. 이를 받아줄 대중을 필요로 하는 것. 그게 여의치 않으니 주변인들을 괴롭힌다. 이들의 마수에 한 번 걸려들면 네 시간은 기본이다. 밑도 끝도 없는 개똥철학을 들어주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전에 대기업 이사로 있다가 퇴직한 분이 그랬다. 한 때 잘 나가던 분인데 과거 영광을 말로 재현하고픈 것이다. 정말 '시간도둑'이 따로 없다. 장점이라면 최소한 대화 후 건지는 게 있다는 것.


6- 몽상가

이들은 늘 꿈속에 사는 듯하다.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다 현실과는 상관없는 4차원적인 이야기들 뿐. 예를 들어 어제 꿈꾼 이야길 1시간 가까이 늘어놓는다. 들을수록 가관인 개꿈을. 그 꿈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내 경험상 꿈은 낮에 있던 불쾌하거나 인상 깊었던 일들을 엉터리로 편집한 것에 불과하던데. 게다가 수면을 취하고 있던 당시 신체 여건이 반영이 된다. 소변이 마렵거나 속이 불편할 때, 또 옆으로 자면서 가슴이나 얼굴, 팔이 눌린 경우 그 상태가 그대로 꿈에 반영이 된다. 그 걸 무슨 의미가 있는 듯 장황하게 풀어놓다니. 또 자기가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일들을 늘어놓는다. 말로 대리 만족하는 것. 이것도 적당히 하면 괜찮은데 이걸로만 꽉 찬 대화 세 시간은 무척 괴롭다.


7- 다큐형

이들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가 다 감정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물리적인 이야기뿐이라.

예를 들어,

추석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 '잘 지낼게 뭐 있냐. 그냥 지내고 왔다. 끝.'

날씨가 요즘 너무 덥다고 하면, '여름이니까 그렇지. 끝.'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서 슬프지 않냐고 하면, '나이 들면 모두 다 죽는다. 끝.'

점심 뭐 먹었냐고 물어보면, '늘 먹던 거 먹었다. 끝'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다. 딱히 틀린 말은 없는데 더 이상 대화하다간 우울증 걸릴 거 같은 무감각한 대화 상대다.


8-티슈형

너무 가벼운 대화 상대도 피곤하다. 이들은 팔랑개비 귀를 가지고 있다. 무슨 말만 꺼냈다 하면 "정말요? 어머 나도 해봐야겠다." 진심이 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티슈처럼 가벼이 흩날릴 뿐. 나와 대화한 걸 기억이나 할지 의문이다. 대화 내용도 별거 없다. 그저 주위에서 주워들은 걸 읊을 뿐, 자기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재미와 의미, 둘 다 없으니 대화 상대로 낙제다.


9- 프로파일러형

이들은 범죄 스릴러물을 너무 많이 본 듯. 상대방을 취조하듯 대화를 이어간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6하 원칙'에 따라 꼬치꼬치 캐묻듯 한다. 상대방이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하나' 싶을 정도로. 이들은 그냥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늘 통계를 맹신하고 뉴스에 촉각을 세운다. 매일 보고되는 코로나 19 확진자 수를 줄줄이 외우고 다닌다. 미세먼지가 한창일 때는 미세먼지 어플을 1시간 단위로 체크한다. 대화할 때도 상대방에게 주로 질문을 던져 정보를 수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사설탐정을 하면 제격일 듯 하나 대화 상대자로는 그다지.


10 -TMI형

안물 안궁(안 물어보고 싶고 안 궁금한 것)까지 속속들이 늘어놓는 형. 굳이 그걸 다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민감한 것까지 말이다. 부부관계일까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남자들 중에 자기 부인과의 잠자리 부분을 천박하게 까발리는 경우다. 듣기가 참 싫다. 부인이 알면 난리 날 듯. 아줌마들 속사포 수다 중엔 시댁 흉부터 심한 자식 자랑 등 세세한 설명이 듣기 괴롭다.


적당히 하면 재미있을 말도 너무 자세하면 지루해진다. 여백의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들. 특히 별로 가깝지도 않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불행을 너무 낱낱이 드러내면 난처해진다. 돌아서서 후회할 게 뻔한데 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또 민망하고 불편하다. 자신에 대한 노출도 때와 장소, 또 관계의 깊이에 따라 적절히 수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뜬금포로 자신이 지은 죄나 민감한 내용을 심하다 싶을 정도의 정보까지 다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걸 듣는 사람은 괜히 경범죄를 짓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기도. 차라리 신부님한테 가서 고해성사를 하던가.


위의 열 가지 중에 나에게 해당하는 건 몇 가지나 될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위 열 가지는 '나의 반성문'이다. 과거 또, 요즘도 종종 저지르는 나의 '저지레'를 고발하여 쓴 글이기 때문.


거리두기가 2.5단계에 이르자 비대면이 무언지 비대화가 무언지 실감이 난다.

뭐든 없어지고 나면 그 가치에 대해 곱씹게 된다. 대화, 가치 그 이상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게 정상화되면 대화 한번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위 열 가지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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