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따뜻함

'달고나와 이발소 그림'의 추억

by 허윤숙

우리는 얼마나 가져야 할까? 지구 자원을 몽땅 쓸어오면 행복해질까? 아니다. 오히려 행복은 약간 모자란 데서 온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먹거리, 입을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모자람'은 일상이었다.


공책은 겉표지 안쪽까지 줄 쳐서 쓰고, 몽당연필을 볼펜 자루에 끼워 썼다. 그땐 그런가 보다 했다. 보리밥 도시락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강제였다. 식성을 내세울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가 가난 인지도 헷갈렸다.


물질이 행복을 좌우하는 건 절대빈곤을 벗어나는 순간뿐이라고 한다. 그 후로는 물질이 많아진다고 해서 행복 곡선이 사선을 그리지 않는다. 물질의 풍요는 오히려 '생태계 파괴'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각종 미디어에선 매일 첨단 기기를 광고한다. 광고는 모두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빠르게 해낼 수 있고, 나 혼자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기기로 아낀 시간엔 혼자서도 잘 놀게 해 준다.


혼술, 혼밥이 유행이다. 혼자가 진짜로 좋을까? 나는 아직도 '여럿'에 익숙하다. 집에 불이 나면 이웃이 달려와서 바가지로 불을 끄고, 입맛이 없으면 동네방네 불러 모아 양푼에 석석 밥을 비벼 먹던 때가 눈물 나게 그립다. 그때 우릴 행복하게 한 건 무엇이었나. 그저 밥 한 덩이에 얹은 '따뜻함'이었다. 할렝한 홑겹 이불속에 두둑이 쑤셔 넣은 솜뭉치였다. 그땐 그게 따뜻한지 몰랐다. 차가운 손이 와서 잡으면 그제야 내손이 따뜻했었구나 하는 것처럼.


사람 사이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가뜩이나 요즘엔 더 식혀야 할 판이다. 이렇듯 속도나 온도에 치일 땐, 감춰둔 감광물질을 꺼내어 뿌린다. 그러면 빛바랜 기억들이 '촤라락' 살아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게 참 불편했는데. 그래도 참 즐거웠어. 별거 없어도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회상만으로 늑골이 뜨끈해진다. 이토록 많은 필름을 저장해 놓은 건 행운이다. 그 필름들은 내가 죽기 전까지 체온을 식지 않게 해 줄 테니.


그 따뜻함을 나누고 싶다. 나와 같은 이들이나 나와 같지 않은 세대와도. 그러면 내 몸이 따뜻해질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그 시절로 되돌아가라면 그건, 글쎄다. 아마 추억은 이런 데에 쓰는 거지. 하며 눙칠 것 같다.


'브런치 북' 제목을 '달고나와 이발소 그림'이라고 붙였다. '달고나'라고 발음하는 순간 달큼한 향내가 코를 간질인다. '이발소 그림' 하면 순박했던 장면들이 떠올라 눈이 스르르 감긴다. 지난 시간 동안 주변 풍경이 참 많이 달라졌다. '달라짐'은 자연스레 '버림'을 동반한다. 쓰레기도 문제지만 집안 곳곳 물건이 넘쳐난다. 조금 덜 가지고 덜 버리면 안 될까. 촌스러우면 어떤가. 얼마 전까지도 옆구리에 끼고 살던 것들인데. 우리 체온이 남아있는 것들인데.


웬 추억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 이만큼 잘살게 된 게 어디냐고, 또는 그깟 '따뜻함'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면 말하고 싶다. "네. 우리에겐 요즘이야말로 그깟 따뜻함이 꼭 필요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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