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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Dec 16. 2020

균형은 이런데도 필요한 거였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

 말을 할 기회가 부쩍 줄어들자 대화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귈 땐 몰랐는데 헤어지고 나면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듯이.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사라지니 사람이 귀한지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주로 내가 떠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돌아서면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았을 텐데. 나는 형편없는 대화 상대였다.


 말은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훨씬 힘들다. 심리 상담소나 점집이 돈을 버는 이유다. 심리 상담을 받고 돌아온 지인에게 무슨 해답을 얻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별다른 코멘트를 받지 못했지만 자기 말을 성심성의껏 들어준 것이 감동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자기 말을 무시하기 일쑤인데 말을 끝까지 들어주니 속이 후련하다고. 대부분의 문제는 법적인 것을 제외하면 딱히 해결할 수가 없다.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밖으로  풀어놓는 수밖에. 그 속풀이를 감당해주는 사람은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런 은인이 있다. 오랜 친구인데 예민한 사춘기 시절부터 내 모든 걸 받아준 친구다. 그 친구에게 속을 털어놓고 나면 문제가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 친구는 마음의 갈무리가 잘 되어서인지 나만큼 속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결국 평생 빚진 기분으로 산다.


 그 뒤로도 대체로 내가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사람들과 대화를 한 게 아니었다. 남에게서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건 함정이다. 그 말에 담긴 여러 가지를 해석하지 못한 건 아둔함이고. 나에게 말을 참 잘한다고 말한 사람이 속으로 ,

'차암, 말이 많다. 어쩌면 저렇게 혼자 떠들까? 내가 말하려고 해도 자꾸만 끼어드네. 뭐라고 한 마디 할까? 그러면 삐지겠지? 좀 알아듣게 말해볼까? 그래 옛말이 있잖아. -니 팔뚝 굵다.- 이렇게 말 한마디 해주면 내 말을 알아들을까? 하긴 그 정도 눈치가 있었으면 저러지 않겠지. 잘한다 잘한다 그러면 진짜 잘하는 줄 알 수도 있는데. 하지만 어쩌겠어? 그렇게 생겼는데. 그 속담도 모르나 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 진짜 말 잘하는 사람은 말을 저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고. 적절히 봐 가면서 하지.'

이랬을 수도 있다.

 

 친한 친구뿐 아니라 남편이나 아이들과도 그랬다. 직장 동료와도 주로 내가 떠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직장에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로 누가 묻지도 않은 내 근황 보고를 하거나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일삼았다. 지금 생각하니 낯이 뜨겁다. 시간이 많아진 요즘 매일 하는 일이 주로 이런 거다.- 과거 장면들이 머릿속을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치고, 그걸 잘근잘근 씹는 것.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는 없으니 유사 명상을 하며 반성하고 있다. 명상이 별건가.


 주위를 둘러보면 청소년이나 성인들까지 힘들어하고 있다. 외롭고 가슴이 답답한데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요즘처럼 공간 안에 갇히면 마음까지 답답해진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까지 생겼다. 특별히 공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 내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남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게 아닐까?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한 번에 많은 말을 했다면 다음번엔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걸 알았다. 안 그러면 듣기만 하는 쪽은 자기가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느껴지니.


이런 이런, 대화에서까지도 균형이 필요한 거였다. 균형이 깨지면 얼마나 참혹해지는지 절실히 깨닫는 중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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