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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13. 2019

곰보빵

그때 왜 곰보빵을 주었던 걸까?

각박한 사회생활에 지칠 때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한다. 그런데 유독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나가지 않는다. 같이 공부하고 뛰놀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예전엔 (그 당시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다.)한 학년에 학급이 20개가량이나 되었고 내가 전학을 많이 다닌 탓도 있다.


어쨌거나 초등 동창생 명단에서 알만한 친구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중 남학생들은 더욱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우리 학교는 3학년 때부터 남녀를 구별하여 학급을 편성했기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사상을 가르치려고 한 것일까? 그 당시만 해도 자주 거론되던 ‘남 녀 7세 부동석’이라는 말은 이제 주변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남녀 구분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어디 가서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간 큰 코 다치는 분위기다.


요즘 여자아이들은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더 빠른 경우도 많고 힘도 세다.     

 

나도 어릴 때 힘이 센 여학생이었다. 특히 팔 힘이 세어서 어느새 ‘팔씨름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내 책상 앞에는 남학생들이 줄을 섰다. 내가 차지한 챔피언 자리에 도전하려고 말이다. 그때마다 얼마나 으쓱했는지 모른다. 평소 날 괴롭히던 남학생들을 힘 하나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어서.  

    

유쾌하지 않은 일도 종종 일어났다. 하루는 한 남학생이 나랑 팔씨름을 해서 한방에 지자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여자애가 뭘 주워 먹고 그렇게 힘이 세? 나중에 시집가긴 다 글렀다.”      


바보같이 그 말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시집 못 간다는 말도 충격이었고 주워 먹었다는 말을 듣기가 너무 속상했던 것이다.


팔씨름 잘하는 거랑 시집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팔씨름 잘하는 건 건강하다는 말이고 그것도 내가 가진 능력 중의 하나가 아닌가?  

    

당시엔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 많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책상이 2인용이었다. 길게 생긴 책상 하나를 짝과 나누어 썼는데, 정확하게 중간 위치를 정하는 게 늘 쟁점이었다.


정확히 센티미터를 재서 절반 위치에 줄을 긋고 서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때 자기 책상 쪽으로 넘어오는 물건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때도 여성 비하 발언이 있었다.  

    

하루는 우리 반에서 제일 짓궂고 못된 남학생이 하필 나랑 짝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어찌나 나를 괴롭히는지 책상 금을 조금만 넘어도 “여자가 재수 없게.”라고 말하면서 화를 냈다. 아빠나 주위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현재 내가 그 동창생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땐 나의 처절한 복수가 이어졌다. 되도록 큰소리로 엉엉 우는 것이다. 그러면 담임 선생님은 그 남학생을 크게 혼내고 아이들은 나를 위로했다.

     

그러던 짝이 웬일인지 나를 당황시키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돈을 낸 학생에 한해 곰보빵이라는 간식을 주었다. 신청을 안 한 학생들은 그 빵을 먹는 학생들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내 짝꿍이 자기 빵을 절반 뚝 떼어서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무척 헷갈리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평소 꼴 보기 싫었던 애가 주는 거라 안 받았다.


하지만 그 애는 한사코 먹으라며 빵을 디밀었다. 그 뒤로도 종종 나에게 빵을 주었다. 나는 속으로 ‘곰보빵을 싫어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또 한 번 크게 헷갈린 적이 있다. 한 남학생이 내 가방을 가지고 도망간 적이 있었는데 그걸 짝꿍이 끝까지 뒤따라가서 빼앗아 온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나를 놀리고 괴롭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걸핏하면 울고 짜증을 낸 것 같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매일 우니 남학생 입장에서 보면 짜증이 날 만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지금까지도 남자들의 심리를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엔 여자 형제만 있었다. 일찍이 남자들의 짓궂음을 받아들일 이해심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 형제가 있는 집의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짓궂음에 비교적 잘 대응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남학생이 나를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남녀 차이를 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는지 우리 학교에서는 남자반 여자반을 따로 만들었다.


또다시 남녀가 화성과 금성으로 자기 궤도를 찾아간 것이다.      


간혹 궁금하다. 혹시 그 행성 간 거리가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부부싸움만 하면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속사포 말을 들으며 남편은 말한다.

‘나란 여자의 기억법’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정말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성에서 온 남자들’한테 가끔 헷갈려서다.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느낄 때마다 가끔씩 초등학교 2학년 때 짝꿍이 기억난다.


수업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짝꿍이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나서 진짜로 헷갈리게 되었다. 그가 음식 중에서 다른 것도 아닌 하필, 곰보빵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이나 두 달 정도가 아니라, 평생 짝꿍이 지금 곁에 있다. 그리고 어릴 적 짝꿍처럼 자꾸만 헷갈리게 한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말은 남편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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