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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3. 2019

이제 포스트 마시멜로 이야기가 필요하다

마치 자전거를 배우듯이.

자전거를 배운 적이 있다. 자전거 타기는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그나마 재미있게 배운 편이다. 운동을 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어서다. 운동에 있어서만은 유난히 실용적인 가치를 매기는 내게 딱 맞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등산이었다. 어차피 올라가자마자 내려올 텐데 무엇하러 힘들게 걸어올라 가는지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 둘레길을 차 타고 올라가는 편이다. 또한 배드민턴을 어쩔 수 없이 배우고 있는데 이것도 이해가 안 간다. 어차피 공을 던자마자 받는데 무엇하러 하는지. 팔만 아프게...


요즘은 기계화되어 달라졌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볼링장 아르바이트가 흔했다. 볼링장에서 쓰러진 볼링핀을 다시 손으로 세워주는 아르바이트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안쓰럽고 화까지 나려고 했다. 같은 대학생이면서 누군 쓰러뜨리고, 누군 허리를 굽혀 볼링핀을 세워주니 말이다. 남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과정이 무의미해 보이는 운동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는 달랐다. 무엇보다 배우기가 쉬웠다. 운동신경이 없는 내가 대여섯 번 만에 타게 되었으니. 자전거는 근거리 이동수단 역할도 톡톡히 한다. 주위에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이나 자전거로 가까운 마트로 장 보러 다니는 주부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 때 마시멜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나눠 주고는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먹게 하는 실험인데, 당장 먹고 싶은 유혹을 얼마나 잘 참느냐 하는 것. 그 실험에서 주어진 시간 후에 먹은 아이들은 그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공부든 뭐든 심하면 문제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미래를 인질로 삼아 현재를 견디는’ 가혹한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인내심은 순종적이고 단순한 신념을 양산해 내기 쉽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서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자립심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어른들이 가만있으라고 해도 정황상 직접 결정을 내려 갑판 위로 올라간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오히려 살아났다.


인내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한마디로 열심히 살면서도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창의적으로!성공이란 것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도 세상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신념이 학습이라는 '거대하고 뜨거운 감자'와 만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 혁규가 쓴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이혁규의 교실수업이야기》에는 맹목적인 신념이 낳는 학습에 대해 경고한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철석같은 신념으로 마시멜로 이야기를 학습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그러나 전통적인 학업 -취업 루트는 그 유용성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높은 청년실업률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교육시스템이 근본적 위기에 봉착했음을 드러낸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실천을 요구한다.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이며 표준적인 개혁과 같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그것 또한 위기를 재생산하는 낡은 습속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실천은 우리 몸에 배어있는 익숙한 습속을 철저히 낯설게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몸의 습속들을 간파해내고 그것을 소거하는 탈 학습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학습 방법을 다시 보아야 할 때이다. 공부는 당연히 지겹다고? 배우는 과정도 즐겁고 그 목적도 분명한 공부는 지겹지 않다. 마치 자전거처럼 말이다.


암기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기 효능감'을 갖게 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때는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한다. 즉 기성 시대에 했던 1, 2등 가려내기식 공부가 아니라, 정보를 선별해내는 능력과 응용력, 창의력이 필요하다. 지금 습득한 대부분의 지식도 6개월만 지나면 쓰레기통으로 가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4차 산업 혁명 시대다. 구세대의 사회 동력이 '헝그리 정신'이었다면 다변화되고 빨라진 이 사회에선 무엇이 필요할까? 묵묵히 견디고 참으면 좋은 미래가 온다는 믿음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대신 ‘지금 당장! 매일! 먹어도 좋아. 무엇보다 영양이 풍부하고, 이빨에도 안전하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비타민 마시멜로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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