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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3. 2019

우리는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가?

영화 '책도둑'을  보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엄숙내레이션이 울린다. '죽음'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서사다. 한강이 쓴 소설 《소년이 간다》가 연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단편적인 한 조각의 퍼즐들, 우린 그 퍼즐이 어떤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무지로 때론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 악행에 힘없이 편입되곤 하는 의식 없는 인간들이란.


영화는 2시간 40분이라는 긴 시간 내내 한 톤으로 유지된다. 너무 칙칙해서 퀴퀴한 곰팡내가 다. 식스센스라는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괴이하고 스산한 분위기.


모든 색은 톤 다운되고 모든 표정은 생기가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 불행하다.


이 지독히도 불우한 분위기와 땅 속으로 가라앉는 절망감이 스크린을 압도한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 모든 이들이 죽은 후의 이야기라는 것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리셀의 양어머니 연기가 압권이다.


겉으론 차가웠지만 속으론 더없이 따뜻한 매력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주인공은 리셀이라는 10대 소녀다.


그녀의 깜찍하고 수려한 외모는 처참한 당시 독일 사회와 대조되어 처연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리셀이라는 여자아이가 동생을 잃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독일인 가정에 입양되어 슬픔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가족까지 해체된 여자아이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다행히 옆집 친구양부모님은 소녀에게 사랑을 준다. 그러다가 유태인을 숨겨주게 되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고비를 넘기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모든 이들이 죽지만 책을 좋아하던 소녀가 책으로 쓰는 바람에 모든 이들의 삶이 생생하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폭력을 저질렀던 사람, 그 폭력에 동조했던 사람, 저항했던 사람. 그리고 소녀처럼 그 모든 걸 아름답고 때로는 덤덤하게 남기는 사람이 있다.

 

만약 글이 없었다면 책이 없었다면 죽음 이후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누가 알 수 있을까?


 누군 가치 있게 살았고 누군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개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리셀이 폭격을 피해 방공호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그동안 읽으며 외워두었던 책 내용을 읊는 장면이다.


이때 죽음의 공포로부터 평화를 선물 받는 사람들.


또 하나 리셀이 침대에서 양아버지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자 오늘은 너무 많이 읽었다며 내일 또 읽어주겠다고 하는데 리셀이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일이잖아요."


우린 독서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더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친구랑 수다를 떨기 위해...


우린 행복을 움켜쥐기보다는 흘려보낸다. 황금덩어리를 손에 쥐기 위해.


하지만 행복은 당장 내 손안에 있는 황금 가루를 손에 묻히거나 움켜쥘 때 온다.


그러나 우린 뭐든 내일로 미룬다.


지금은 황금가루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는 그 황금가루를 마침내 황금덩어리로 뭉쳐내는 기적을 일으킨다.


독서는 사람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영화에서 죽어가던 마크를 살린 건 리셀이 책을 훔쳐와 머리맡에서 읽어준 덕분이다.


또 리셀이 가족을 잃고 새 생활에 적응하며 희망을 갖게 된 것도. 또 방공호 안의 사람들이 폭격의 공포로부터 위안을 받았던 것도 바로 책 덕분이다.


전쟁이라는 변수에 어른들은 못 내 추악하고 탐욕스러움에 노출되지만, 리셀은 재치와 사랑으로 어른들을 감동시킨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극도의 상황에서도 리셀처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인간의 위대함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속살에 비비고 싶어 지게 만드는 마음이 따뜻한 리셀.


아마도 책은 때론 죽음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해 준다.


살금살금 다가가 살을 비비고 마침내 딛고 일어서게 해 줄 그 무엇이 아닐까?


리셀처럼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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