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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4. 2019

대단한 일상에서 소소한 성공을

'인생'이라는 열차를 타고 가는 여러 가지 방법

초등학교 여학생들한테 찍히는(?) 교사가 되려면 무슨 짓을 하면 될까?


사춘기에 접어든 여학생에게 머리가 답답해 보이니 이마 좀 드러내라며 앞머릴 제치는 것?(여학생들에게 앞머리는 생명줄과도 같다.)


그런 말을 하면 수업 시간에 두고두고 교사에게 눈을 흘길 것이다. 하지만 더 큰 한방이 있다. 눈을 흘기는 정도가 아니라 영구히 나쁜 교사라고 도장을 팔 것이 분명한 방법. 즉 방탄소년단이 못 생겼다고 하거나 멤버들 미모가 다 성형빨 아니냐고 한다면?


이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마 교단에서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다른 아이돌 팬덤에 비해 '아미'라고 불리는 방탄소년단 팬덤은 그 이름처럼 전투적이고 충성도가 대단하다.


만약 탄이 오빠(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조금이라도 흠이 가는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든다. 물론 우아한 몸짓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그들은 아미만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왜 그렇게 방탄소년단이 좋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가사가 너무 좋아서라고 한다. 마치 자기들도 사랑받을 만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한다나?


한 여학생이 수줍게 말한다.

"방탄소년단은 앞으로 연애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거든요."


특히 수줍음이 유난히 많고 내성적인 아이들 소위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라고 불리는 아이들까지도 방탄소년단의 가사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가사를 쓸 때 이렇듯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는  노래가 인기를 끈다.


가사가 특이하다. '세계 평화' 이런 거 보다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노래한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보다 내가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것.


아이돌 하면 편견을 가졌던 사람들조차 방탄소년단의 노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가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아이돌 노래는 대부분 성적인 농담, 남녀가 가볍게 썸 타는 이야기, 아니면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일탈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았다.


아니면 아무 뜻이 없던가.


게다가 그 가사를 쓰고 노랠 하던 가수가 마약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 그 노랠 좋아하던 팬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내가 겨우 이런 가수의 노랠 좋아한 거야?' 하고.


방탄소년단이 말하는 대부분의 주제는 '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내 주변의 사소한 일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라는 것.


더 나아가 일상을 소중하게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등학교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셰프가 있다. '허세 셰프'라고도 불리는 최현석 셰프이다. 얼마 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던 중 최현석 셰프가 하는 허세 어린 동작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금을 뿌릴 때였다. 일반적으로는 소금을 팔꿈치 높이에서 뿌린다. 그러면 분사각도가 좁다 보니 골고루 뿌려지지 않는다.


허세 셰프는 달랐다. 그는 눈높이까지 손을 들어 올려 뿌린 것이다. 그 동작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재료에 소금을 골고루 분사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더러 그릇 밖으로 소금이 튀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수까지 눈감아줄 수 있는 건 그의 강력한 매력 덕분이다.


요리 실력 외에도 사소한 몸동작 하나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이것은 일상을 매력적으로 가꾸는 기술이 아닐까? 다른 셰프들이 소금을 뿌리는 동작은 그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허세 셰프의 소금 뿌리는 일은 이미 일이 아니었다. 그 작업을 어떻게 하면 더욱 멋지고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한 것처럼 보인다. 일상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 전 시대에 성공! 성공! 외치는 것은 결과를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를 연상시켰다. 그 기관차 안에서는 도착지를 향한 목적성 때문에 여행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얼마 전 열차 여행 자체를 콘서트와 접목한 것이 생겨 눈길을 끌었다. 열차 타고 가는 시간을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같이 열차를 타고 가면서 노래를 불러주다니...


그 열차 안에서는 어쩌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인생의 향연을 펼치는 것이다. 현재를 즐기는 신선한 발상이다.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마치 행복이라는 퍼즐 그림이 각각 하나의 독립된 그림으로도 만들어진 것과 같다.


이쯤 되면 일상은 절대 ‘소소’ 하지 않다. 오히려 ‘대단한’ 셈이다. 누구에게나 항상 공짜로 주어지는 태양이 사실 가장 위대한 존재이듯이 말이다.


방탄소년단은 노랫말처럼 일상의 사소한 일들도 여러 가지 루트로 팬들과 공유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고 해외투어 하는 일들이 마치 그들의 놀이처럼 여겨질 정도다.


우리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만 바라보아도 그저 행복한 엄마 미소를 짓는다. 그냥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뿐인데도.


그러다가 그 대단한(?) 일상의 중간에 잠깐씩 소소한 성공이 저절로, 조용히 피어날 뿐이다.


이쯤 되면 방탄소년단 팬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일상을 이토록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맞다. 나는 아미다. 몇 년 동안 학생들에게 그토록 끈질기게 영업을 당했는데 안 넘어갈 수가.


게다가 그동안 놓쳐왔던 일상의 행복이 아쉽기까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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