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범 Sep 07. 2024

우연의 미학: 월리드 베시티의 'FedEx' 시리즈

운송 과정이 만들어내는 예술, 그리고 맥락의 중요성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월리드 베시티는 독특한 유리 조각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의도적으로 깨지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입니다. 각 유리 조각은 FedEx 배송 상자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 크기로 만들어졌고, 작가는 이를 미국 전역의 다양한 갤러리와 전시회로 보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십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월리드 베시티의 'FedEx' 시리즈 작품

베시티의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혁신적입니다

첫째, 과정의 예술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운송 과정 자체가 예술 창작의 일부가 됩니다. 유리가 깨지는 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둘째, 우연성의 수용입니다. 작가는 유리가 어떻게 깨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연성을 예술 창작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작품은 예술 작품이 단순히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쳐 온 과정과 맥락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넷째, 제도 비평의 성격을 띱니다. FedEx라는 특정 기업의 배송 상자를 사용함으로써, 베시티는 현대 사회의 물류 시스템과 예술 제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성을 도입합니다. 작품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전시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이는 정적인 예술품이라는 전통적 개념에 도전합니다.


베시티의 'FedEx' 시리즈는 로버트 모리스나 로렌스 와이너 같은 개념 미술가들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현대 사회의 물류 시스템과 디지털 시대의 정보 흐름을 반영합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월리드 베시티의 'FedEx' 시리즈는 단순한 깨진 유리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동하며,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이고 시각적인 탐구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예술과 일상, 의도와 우연, 창작과 파괴 사이의 경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과 한국에만 유독 유명한 곤충학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