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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Aug 05. 2024

선풍기 사망설: 한국의 독특한 도시 전설

과학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현대의 미신

대한민국에는 여름철마다 등장하는 독특한 도시 전설이 있습니다. 바로 '선풍기 사망설'입니다. 이 괴담은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면 질식해 죽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미신입니다.


이 괴담의 기원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5년 신문 기사에서 이미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언론이 이를 사실인 양 보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선풍기 사망설이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선풍기는 단순히 공기를 순환시킬 뿐, 산소를 소모하거나 공기 성분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또한, 인체의 방어 기제는 수면 중 위험한 수준의 저체온증을 막아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괴담이 오랫동안 믿어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설명은 이 괴담이 전기 절약을 위한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전력 부족이 심각했던 시기에 국민들의 전기 사용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여름철 의문의 사망 사건을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괴담이 한국에서 특히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독특한 주거 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지방이 있는 가옥 구조나 바닥에서 자는 습관 등이 이 괴담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선풍기 사망설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한국 사회의 특정 시기를 반영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 지식의 부족, 언론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불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강력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오늘날 이 괴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믿음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과학적 사실과 문화적 믿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정보의 전파와 수용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선풍기 사망설은 단순한 괴담을 넘어 한국의 현대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학적 사실의 중요성과 동시에 문화적 믿음의 강력함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과학과 문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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