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인간을 완성하는 거울
서사학으로 바라본 일상과 문명의 연결고리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을 통해 서사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 그동안 품어왔던 생각들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완성되고, 이야기로 문명이 자라날 수 있었다는 믿음은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언급된 인지혁명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야기가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의력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서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더욱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H. 포터 애벗의 『서사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7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서사학의 기본 개념부터 복잡한 이론까지,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서사학 강의』의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서사의 기본 개념과 구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사학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이야기의 구조와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언뜻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현상을 탐구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이야기를 만들고 듣는 존재입니다. "오늘 점심에 뭐 먹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조차 작은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심지어 한 장의 사진을 볼 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곤 합니다.
이야기의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고, 생각을 변화시키며, 때로는 행동의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지도자들의 연설은 대개 강력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동화나 우화는 우리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의 매력은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1분이 60초로 정해져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1분이 10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찰나의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의 유연성 덕분에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압축하거나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지식과 공감 능력을 확장시킵니다.
모든 이야기의 핵심에는 '사건'이 있습니다. "비가 왔다"라는 간단한 문장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히 사건의 나열만이 아닙니다. 같은 사건도 누가,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와 '서사담화'의 차이입니다.
스토리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해당하며, 서사담화는 '그 일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왕이 죽고, 그 후 왕비가 죽었다"라는 문장은 스토리에 해당합니다. 반면, "왕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왕의 뒤를 따랐다"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서사담화의 영역에 속합니다. 이처럼 서사담화는 작가나 화자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전달하는지를 다룹니다.
이야기 속에는 중요한 사건과 덜 중요한 사건이 공존합니다. 주요 사건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부차적인 사건들은 살을 붙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그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야기다움', 즉 서사성은 개인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짧은 문장에서도 깊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다른 이는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이야기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음 글에서는 서사의 구조와 시간의 관계, 그리고 서술자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서사학의 개념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이야기의 힘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