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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Jun 22. 2024

메타픽션 기법과 제 4의 벽 깨기

동화가 아닌 이화로 관객에게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들

우리가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대부분은 작품 속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을 즐깁니다.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야기에 몰입하고, 가상의 현실을 마음껏 탐험하죠. 작가들 역시 독자들이 작품 세계에 더 깊이 동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메타픽션 기법은 오히려 반대로 작동합니다.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이 허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죠. 소설 속 화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자신이 소설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마치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말을 걸며 가상의 '제4의 벽'을 깨부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에요.     


메타픽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작품은 단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입니다. 기사도 소설의 관습을 패러디하는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1부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소설 속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듭니다. 책 속에서 책을 읽는 독특한 구조는 독자가 소설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메타픽션의 사례라 할 수 있죠.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1부 초판본 표지

'제4의 벽 깨기'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도 다양합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영화 '하녀'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동식이 카메라를 나이든 남자가 여자에게 패가망신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식은 카메라를 보며 관객에게 손가락질하며 선생도 그럴 수 있고 고개를 젓는 선생도 매한가지라며 웃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충격적인 한 줄은 영화의 환영성을 깨트리고, 관객이 영화 자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녀(1960) 마지막 장면_관객에게 손가락질 하며 이야기하는 동식

우디 앨런 감독의 1985년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독특한 방식으로 메타픽션을 구현합니다. 주인공 톰은 영화 속 인물 세실리아에게 반해 그녀를 현실로 불러냅니다.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세실리아의 경험은 관객이 허구와 실재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들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과 관습에 대한 재치 있는 성찰을 담고 있죠. 이처럼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메타적 구조를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_포스터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 '데드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코믹스 속에서 데드풀은 끊임없이 독자를 향해 말을 걸고 장난을 칩니다. 자신이 코믹스 속 허구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심지어 작가를 비웃기까지 하죠. "이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군. 작가의 상상력이 고갈된 것 같아." 이런 유쾌한 메타픽션 덕분에 데드풀은 마블 팬들에게 특별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코믹스 데드풀_만화 프레임을 찢고 나오려는 데드풀 모습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메타픽션은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해 능동적으로 사유하게 되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창작된 허구라는 사실, 그 이면에는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지적인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가 메타픽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작품 속에서 겪은 '현실 대 허구'의 경계 허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현실이 사실은 구성된 허구일 수 있다는 통찰을 줍니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죠.     


물론 모든 작품이 메타픽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단순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메타픽션과 제4의 벽 깨기가 주는 신선한 재미와 지적 자극을 한 번쯤 느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새로운 경험,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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