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간의 숫자 명상, 예술로 승화된 삶의 기록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폴란드 출신의 예술가 로만 오팔카(Roman Opałka, 1931-2011)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자신의 일생을 바쳐 시도했습니다. 그의 작품 '1965/1 - ∞'는 시간의 흐름을 숫자로 표현한 독특하고 감동적인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1965년, 당시 34세였던 오팔카는 하나의 결심을 합니다. 1부터 시작해 무한대를 향해 숫자를 써내려가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아이디어는 그의 남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196x135cm 크기의 캔버스에 0호 붓으로 흰색 물감을 이용해 숫자를 적어나갔습니다. 1, 2, 3, 4...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의 행렬. 이것이 바로 '1965/1 - ∞'의 시작이었습니다.
오팔카의 작업 방식은 엄격했습니다. 그는 항상 같은 크기의 캔버스를 사용했고, 숫자를 쓸 때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1968년부터는 자신이 쓰는 숫자를 폴란드어로 읽어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음성 녹음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전시장에서 그의 그림과 함께 재생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1972년부터 시작된 변화입니다. 오팔카는 백만 번째 숫자를 쓴 후, 매 새 캔버스마다 배경색에 1%의 흰색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즉 숫자가 커질수록 배경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그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흰 배경에 흰 숫자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시간의 소멸, 혹은 영원을 향한 여정을 상징했을 것입니다.
오팔카의 작업은 단순히 숫자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 캔버스가 완성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항상 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 같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죠. 이 사진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우리는 한 인간의 노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오팔카의 모습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오팔카의 이 말은 그의 작품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그에게 '1965/1 - ∞' 프로젝트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 그 자체였고, 시간과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이었습니다.
오팔카는 2011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캔버스에 적힌 숫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끝자리가 8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47년간 이어진 그의 숫자 여행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팔카는 이 '미완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어서 더는 숫자를 쓸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될 테다."
오팔카의 '1965/1 - ∞'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죽음을 앞둔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오팔카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다음에 시계를 볼 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싶나요? 로만 오팔카의 '1965/1 - ∞'는 우리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마주하고, 그 의미를 찾아갈 것을 제안합니다.
예술은 때로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오팔카의 작품은 그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 즉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의 끝없는 숫자의 행렬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