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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Aug 26. 2024

겨드랑이 털의 역사: 자연스러움에서 금기까지

한 세기 동안 변화한 미의 기준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영화 '색계'를 보신 분들 중 여자 주인공의 겨드랑이 털에 주목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털을 그대로 두고 봤을까?"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여러분은 수염처럼 겨드랑이 털도 회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의 겨드랑이 털은 그저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주로 입었던 빅토리안 스타일의 드레스는 목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옷이었기 때문에, 겨드랑이를 드러낼 일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누구도 여성의 겨드랑이 털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명 면도기 회사 질레트의 광고 캠페인이었습니다. 질레트는 당시 남성용 면도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해 여성 시장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민소매 원피스의 유행이었죠. 이제 여성들의 팔과 겨드랑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질레트는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1917년, 질레트는 "이제 옷을 잘 입고 털 관리를 잘하는 여성이라면 겨드랑이를 하얗고 부드럽게 유지합니다"라는 문구를 퍼뜨렸습니다. 이 메시지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패션 모델들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질레트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고, 이는 다리털 제거에 대한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타킹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 질레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나일론 생산이 군수용품에 집중되면서 스타킹 공급이 줄어들었고, 여성들은 결국 다리털 제거를 위해 면도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의 체모 제거 문화는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왔고,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의도된 계산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습니다. 여성의 체모 제거 문화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한 미용 관행이 아니라 기업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의 산물이었던 것이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사회의 미적 기준과 관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리고 그 기준을 만들어낸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미적 기준과 관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진정한 자아 표현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마케팅의 결과물인지 끊임없이 되물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진정성 있는 미적 기준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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