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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Sep 14. 2024

의자 하나, 질문 셋: 현실의 경계를 묻다

조셉 코수스의 개념미술로 펼쳐보는 존재의 본질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물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미국의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는 1965년에 만든 '하나와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라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 매우 단순합니다. 전시장에는 세 가지 형태의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실제 의자, 그 의자의 사진, 그리고 사전에서 발췌한 '의자'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성 속에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코수스의 이 작품은 '의자'라는 대상을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실제 의자는 물리적 현실을, 사진은 그 현실의 재현을, 그리고 사전적 정의는 언어적 개념을 나타냅니다. 이를 통해 코수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의자'인가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의자'인가요?"


이 작품은 개념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개념 미술은 1960년대에 등장한 예술 운동으로, 작품의 물리적 형태보다는 그 뒤에 있는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코수스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은 미(美)와 양식이 아니라, 언어와 의미의 집합체"라는 자신의 철학을 표현했습니다.


'하나와 세 개의 의자'는 또한 우리의 인식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그것의 물리적 형태, 이미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을 동시에 인식합니다. 코수스의 작품은 이 과정을 시각화하여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전시될 때마다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의자는 전시 장소에 따라 다른 의자로 대체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진도 새로 찍힙니다. 이는 작품의 물리적 형태보다 그 개념이 더 중요하다는 코수스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코수스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품 자체와 당신이 단순히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물체와 사진이 위치를 바꿔 가면서 그대로 똑같은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이는 예술 작품의 본질이 그 물리적 형태가 아닌 그 뒤에 있는 아이디어에 있다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와 세 개의 의자'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과 재현의 관계는 무엇인가? 언어는 어떻게 현실을 구성하는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의자를 통해 우리의 인식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다음에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세요. 당신에게 '의자'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의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아마도 당신은 이 단순한 질문을 통해 현실, 언어, 그리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조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는 우리에게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를 일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더 깊은 철학적 사유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념 미술의 힘이자, 코수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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