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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Sep 17. 2024

빛으로 그리는 공간: 제임스 터렐의 '스카이스페이스'

지각의 경계를 허무는 빛의 마법사

우리는 매일 하늘을 보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경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미국의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은 그의 대표작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하늘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작품은 빛, 공간, 그리고 인간의 지각이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합니다.


'스카이스페이스'는 천장에 구멍이 뚫린 밀폐된 공간입니다. 관객은 이 공간에 들어가 편안하게 앉아 천장의 구멍을 통해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설정은 실제로 정교하게 계산된 빛의 연출과 결합되어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터렐은 공간 내부의 조명을 천천히 변화시킵니다. 이 변화는 우리의 눈에 거의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미묘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보는 하늘의 색깔과 형태를 극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때로는 하늘이 평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를 가진 공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의 지각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주관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스카이스페이스'의 매력은 그것이 자연 현상과 인공적 개입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터렐은 하늘이라는 가장 자연적인 캔버스 위에 빛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 결과, 우리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하늘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또한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합니다. 하루 중 시간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스카이스페이스'의 모습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연의 순환과 우리 존재의 유한성을 상기시킵니다.


터렐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예술입니다. 그는 관객이 작품 속에 완전히 몰입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작품은 빛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빛을 인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이 작품의 본질을 잘 설명해줍니다.


'스카이스페이스'는 또한 명상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고요한 공간에서 변화하는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관객은 자연스럽게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는 현대인들에게 귀중한 휴식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다음에 제임스 터렐의 '스카이스페이스'를 경험할 기회가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감상해보세요. 처음에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점점 더 깊은 경험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경험은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제임스 터렐의 '스카이스페이스'는 우리에게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우리의 지각과 의식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를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우주와 연결시키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예술의 힘이자, 터렐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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