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딸에 대하여]는 평범한 중년 여성의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엄마의 고단한 삶이 화면에 담기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인생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생깁니다. 딸이 동성 연인과 함께 살 집의 전세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딸 '그린'은 동성 연인 '레인'과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고, 이로 인해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엄마는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딸의 동성 연인과 한 집에서 사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기에 치매에 걸린 노인 '이제희'를 함께 돌보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영화는 이들의 갈등과 화해, 이해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드러납니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점들을 장면과 함께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당사자성의 차이가 인상 깊었습니다. 엄마는 치매에 걸린 이제희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딸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반면 딸은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 교수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봅니다. 이 장면들은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보여주며, 세대 간 가치관의 간극을 드러냅니다. 이 간극은 줄어들 수 있을까요?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러 장면에서 이 상황이 복잡하게 교차가 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 영화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 닉네임의 사용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딸의 연인은 항상 딸을 '그린'이라고 부르고, 자신도 '레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엄마는 딸의 연인이 자신의 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주고, 기존 질서와 새로운 가치관 사이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셋째, 현실의 벽을 마주하는 모습이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동성 결혼이 불가능한 현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부당해고,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남자만 할 수 있다는 관습 등이 캐릭터들의 삶을 제약하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넷째,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성문제를 다룬 많은 영화들은 연대를 그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이 영화에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이제희의 장례식 장면에서 딸과 레인,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모습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지지 체계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네 명이 함께 모여 레인이 만든 빵을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진정한 가족으로 보였고, 혈연을 넘어선 연대와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섯째, 엄마 캐릭터의 점진적인 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혼자 누워 눈을 붙이고 있을 때, 딸과 친구들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엄마는 딸에 대해 생각하는 듯 보였고, 화면에 '딸에 대하여'라는 타이틀이 나타났습니다. 이 장면은 엄마와 딸 사이의 단절이나 엄마의 고독으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감독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영화 말미에 엄마가 거리에서 마주친 동성 커플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 사회적 편견, 세대 간 이해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줍니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관계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24년 9월 4일에 개봉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따뜻한 질문이자, 변화를 향한 초대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