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투병, 그리고 영원한 예술혼
이번에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개인적인 삶과 사랑, 그리고 그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살펴보시죠.
백남준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예술만큼이나 독특하고 흥미롭습니다. 그의 곁에는 오랫동안 두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아내가 된 일본 예술가 쿠보타 시게코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뮤즈이자 예술적 파트너였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었습니다.
쿠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을 14년이나 짝사랑했던 끝에 결혼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결국 1977년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순수한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쿠보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한편, 샬롯 무어만은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백남준의 많은 퍼포먼스에 참여했으며, 특히 '오페라 섹스트로닉'에서 누드 연주를 선보이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백남준과 샬롯의 관계는 예술적 파트너십을 넘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실체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남준의 마음 한켠에는 항상 그의 첫사랑 이경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유치원 시절 만난 이경희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그의 가슴속에 남아있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그녀에게 드로잉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1996년, 백남준은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왼쪽 몸을 쓸 수 없게 된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특한 재활 치료 방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후에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투병 중에도 백남준은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그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대규모 프로젝트는 2004년 독일 도이체방크 본사에 설치된 '32대의 자동차'였습니다.
2006년 1월 29일, 백남준은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 역시 그의 삶만큼이나 특별했습니다. 문상객들은 서로의 넥타이를 잘라내는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이는 백남준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넥타이 자르기'를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백남준 사후, 그의 작품 가치와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습니다. 일부 작품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그의 작품 가격이 동시대 다른 유명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등의 이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의 예술적 업적과 비디오 아트에 끼친 영향력은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도 있습니다. 2021년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 '수사슴'이 약 6억 6천만 원에 낙찰되는 등, 그의 작품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백남준은 세계적인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사랑과 고통, 열정과 투병을 경험한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과 예술은 우리에게 기술과 인간성, 전통과 혁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음 편에서는 백남준의 유산과 그가 현대 예술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