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_10
사랑이란 감정에는 늘 아련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아름답지만 시간이 지나면 씁쓸함만 남는 법이죠. 영화사에는 이런 사랑의 아픔을 담은 걸작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한 폭의 동양화처럼 절제되고 우아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왕가위 감독의 2000년작 「화양연화」입니다.
「화양연화」는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과 외로움을 그려냅니다. 그들은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받지만 슬픔을 삭이며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상황의 유사함으로 맺어진 관계는 점차 사랑으로 발전하고, 우리는 그 섬세한 감정의 떨림을 바라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몸짓과 표정, 오래된 홍콩 거리의 풍경, 그리고 아련한 음악은 보는 이를 60년대 홍콩으로 빠져들게 하죠.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추어보는 듯한 촉감까지 선사합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런 영상미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내면까지 들여다봅니다. 스산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쓸쓸함이 전해지고, 음식을 나눠먹을 때면 어색함이 피부로 와닿죠. 말 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낼 때, 우리는 그들의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영상과 음악, 절제된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적 미학이랄까요.
「화양연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외로움에 관한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는 두 사람,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위로받는 모습은 현대인의 고독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너무 가까워지면 현실의 벽에 막힐까봐, 그렇다고 멀어지기엔 서로가 너무 필요해서. 결국 이 불완전한 사랑은 아련한 추억으로 끝을 맺고 맙니다.
왕가위 감독은 늘 독특한 영화 문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등의 작품을 통해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절제된 영상과 음악으로 그려왔죠. 「화양연화」 역시 이런 왕가위 감독 영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유예, 그것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 같은 것일 겁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밀어내면서도 끌어당기는 사랑의 본질을 응시합니다. 치열하지만 애틋하고, 우아하지만 처연한 이 감정을, 왕가위 감독은 홍콩이라는 도시의 단면에 녹여냈습니다. 교차하면서도 어긋나는 남녀의 시선처럼 모호하고 아련한 서사. 그것은 곧 우리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다가가려 하면서도 멀어지는 그런 것이라는 걸, 이 영화는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마주 보고 있으면서 손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 속마음을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갑갑함. 상반된 감정이 뒤섞여 아련한 울림을 남기는 영화, 「화양연화」는 현대인의 사랑과 외로움의 본질을 응시하게 만드는 걸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양적 정서가 배어있는 서정적 영상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질적 슬픔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