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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황금기

제작 시스템을 통해서 황금기를 누린 할리우드

by 김형범

여러분, '할리우드의 황금기'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약 40년간 지속된 이 시기는 미국 영화 산업이 세계를 제패한 눈부신 성장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기의 시작에는 의외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죠.

핸리포드.jpg 핸리 포드와 그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만든 자동차

1914년,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자동차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을 때,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이를 주목했습니다.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스튜디오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할리우드 황금기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죠.

MGM 로고 사지 촬영 장면.png 할리우드 메이져 영화사 MGM 로고 촬영 장면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 영화 제작은 마치 거대한 공장과 같았습니다. 배우, 감독, 작가, 기술자들은 모두 스튜디오와 장기 계약을 맺고 일했고, 각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었죠. 이 시스템의 효율성 덕분에 할리우드는 엄청난 양의 고품질 영화를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할리우드는 매주 평균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당시 미국 인구가 1억 5천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놀라운 숫자죠. 마치 온 나라가 영화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지금도 기억하는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했습니다. 1939년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로 꼽히고 있고, 1941년의 '시민케인'은 영화 기법의 혁명을 일으켰죠. 1952년 개봉한 '싱잉 인 더 레인'은 뮤지컬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스튜디오 시스템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는 1927년 개봉한 '재즈 싱어'입니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최초의 장편 유성영화로,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와우, 영화 속 인물이 말을 하네!"라며 관객들은 열광했고, 이를 계기로 무성영화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The_Jazz_Singer_1927_Poster.jpg 최초의 유성 뮤지컬 영화 재즈 싱어(1927)_포스터

할리우드 황금기의 또 다른 특징은 스타 시스템이었습니다. 클라크 게이블, 험프리 보가트,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들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닌, 전 세계인의 우상이 되었죠. 이들의 인기는 영화를 넘어 패션, 라이프스타일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술적 혁신도 이어졌습니다. 1930년대 말부터는 컬러 영화가 본격화되었고, 1950년대에는 와이드스크린이 도입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도 할리우드는 3D 기술, 시네마스코프 등 새로운 기술로 대응했죠.


물론 스튜디오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창의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의 힘이 커지면서 배우와 스태프들의 권리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었죠. 결국 이 시스템은 1948년 대법원의 판결로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황금기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들, 스타 시스템, 그리고 끊임없는 기술 혁신은 모두 이 시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죠.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어떻게 할리우드를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만들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 고전 영화를 볼 기회가 있다면, 그 화면 속에 담긴 할리우드 황금기의 찬란한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게 보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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