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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공포,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들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by 김형범

우리는 때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악신론을 다룬 지난 에세이에서 논의한 신에 대한 공포 역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 있을 때,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번에는 악신론과 연결되는 또 다른 세계관, 코즈믹 호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코즈믹 호러는 H.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장르로, 인간이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힘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를 다룹니다. 이 장르에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등장하며, 그 존재는 인간에게 악의를 가지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로 공포의 원천이 됩니다.


코즈믹 호러는 우주를 탐험하거나 심해를 들여다보듯,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와의 만남을 그립니다. 이 만남은 단순히 괴물이나 초자연적 사건의 발생을 넘어서, 인간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과 마주할 때 발생하는 공포를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 등장하는 고대 신들은 인간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이 존재들은 인간의 세계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움직입니다. 이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스스로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자각할 때 느끼는 무력감입니다. 이러한 공포는 악신론에서의 '신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코즈믹 호러가 주는 공포는 그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장르는 우리에게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과학과 지식, 문명은 우리를 안심하게 만들지만, 정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은 우주의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서 무지의 외딴섬에 살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이 외딴섬을 넘어설 때 마주하게 될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코즈믹 호러를 통해 우리는 악신론의 개념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습니다. 신이 악의적일 수 있음을 다룬 악신론과 마찬가지로, 코즈믹 호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공포를 중심으로 합니다. 이때 공포는 그 존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인간이 그 존재를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다릅니다. 그것은 무엇을 피하거나 싸워 이길 수 있는 공포가 아닙니다. 그저 그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이해할 수 없음이 중심에 있습니다.


결국 코즈믹 호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우리가 우주적 존재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힘과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코즈믹 호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 앞에서의 무력함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촉발시키는 장르입니다. 악신론과 마찬가지로, 이 장르도 인간 존재의 의미와 우리를 둘러싼 우주적 힘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통해 인간의 작은 존재감을 자각하게 됩니다. 코즈믹 호러는 인간의 한계를 인지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기시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주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거대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 장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종합하면, 코즈믹 호러는 악신론과 비슷하게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신적 존재들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다룹니다. 두 개념 모두 인간의 무력감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의 위치를 재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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