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화의 조건과 인간 문명 이야기
얼룩무늬가 아름답고 말과 비슷하게 생긴 얼룩말을 보면 자연스레 말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룩말을 타거나 농사에 이용하지 않습니다. 얼룩말은 왜 말처럼 길들여지지 않았을까요? 이는 단순히 얼룩말이 야생에서 살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동물이 인간과 가까워지고 가축화되려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얼룩말은 이 조건들을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야생동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서 설명된 조건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동물이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먹이로 생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육식동물은 사육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축화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개는 잡식성이라 비교적 사육이 쉬웠지만, 고양이와 같은 순육식 동물은 주로 독립적으로 살아갑니다.
동물이 빨리 성장해야 인간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릴라나 코끼리는 다 자라는 데 10년 이상 걸려 사육하기엔 효율성이 낮습니다. 반면, 소나 돼지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해 가축화되기에 적합했습니다.
동물이 인간 가까이에서 감금 상태로 살며 번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부 동물은 특정한 환경에서만 번식하거나 복잡한 구애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동물들은 인간의 환경에서 잘 번식하지 못해 가축화가 어렵습니다.
동물의 성격이 온순하고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특성을 가져야 합니다. 곰이나 얼룩말처럼 공격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동물은 가축화되기 어렵습니다. 얼룩말은 사람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며, 심지어 호랑이보다 동물원 사고율이 더 높다고 합니다.
신경이 예민한 동물은 감금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죽거나, 울타리를 부수며 도망치려다 생명을 잃습니다. 예를 들어, 들소는 인간이 길들이기 어렵고 울타리를 부수는 습성 때문에 가축화되지 못했습니다.
동물이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어야 인간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양이나 소처럼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은 위계질서가 있어 인간을 리더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동물은 가축화가 어렵습니다.
얼룩말은 이 조건들 중에서 특히 공격적이고 예민한 성격, 감금 상태에서의 불안정성, 그리고 인간과의 협력에 필요한 사회적 구조의 부족이라는 이유로 가축화되지 못했습니다. 얼룩말은 스트레스에 민감해 감금 상태에서 쉽게 동요하거나 도망치려는 행동을 보이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안정적인 사육이 어렵습니다. 또한, 인간을 리더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위계질서가 부재해 훈련 및 협력 과정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여섯 가지 조건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가축화의 역사뿐 아니라, 인간 문명의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에게 단순히 식량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의 공존 속에서 문명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얼룩말 같은 동물들이 가축화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