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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필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유교와 기록의 힘으로 나라를 운영하다

by 김형범

동아시아 역사에서 조선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고구려나 고려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국과 맞섰던 것과 달리, 조선은 무력보다는 필력을 앞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교가 주류 사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조선은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이런 특징은 단순히 문치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을 넘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실험이었습니다.


조선 이전의 왕조였던 고려만 하더라도 무력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전투력과 전략으로 적들의 침략을 막아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이라는 대재앙 속에서도 버티며 나라의 자주성을 지켰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 들어와 유교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문(文)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이는 곧 나라의 중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기록의 나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를 대표하는 사례입니다. 약 472년에 걸친 기록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방대한 역사 자료로, 정치, 외교, 문화, 경제 등 조선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왕과 신하의 일상 기록이 아닌, 당시의 사회적, 자연적, 경제적 상황을 세밀하게 담은 이 실록은 현대 역사학자들에게도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청역조실록이 비교적 짧은 296권의 기록으로 구성된 점을 생각해 보면, 조선왕조실록이 얼마나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작성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기록 문화는 단순히 과거를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후대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의 필력 중심적 사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성을 발휘했습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논리와 토론을 중시했으며, 과거 시험을 통해 국가 운영의 중추를 담당할 인재들을 선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관료를 뽑는 절차를 넘어, 조선의 정신과 철학을 사회 전반에 퍼뜨리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은 글과 지식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무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경쟁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이런 선택이 항상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을 중시하면서 무력의 중요성이 소홀해진 측면도 있었습니다. 국방력이 약화되며 외세의 침략을 받는 경우도 있었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문치주의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기록과 지식의 중요성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필력과 무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조선이 보여준 문치주의는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기록의 중요성, 지식의 축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 운영은 현대 사회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조선의 선택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강한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지혜와 기록을 통해 얻는 통찰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조선은 증명했습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도 기록과 정보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단순한 문치주의를 넘어선 조선의 철학은 인류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세 줄 정리

1.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무력보다 필력을 강조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2. 방대한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문치주의를 상징하며, 오늘날에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3. 조선의 역사는 지혜와 기록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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