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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인은 어떻게 외과 의사가 되었을까?

중세 시대의 잔혹한 직업이 남긴 의외의 유산

by 김형범

중세 유럽에서는 사형 집행인이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역할만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의외로 다양한 부업을 겸업하며 살아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형 집행인을 불길한 존재로 여겼고, 마을에서도 멀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없으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사형 집행인은 단두대에서 도끼를 휘두르거나 교수형을 집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고문의 역할도 맡았다. 종교재판이 성행하던 시기, 이들은 이단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직접 고문을 가하며 신체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일을 했다. 반복적으로 인간의 뼈를 부수고 살을 찢는 경험을 하다 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신체의 구조를 익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반대로 망가진 신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절이 생기거나 탈구가 됐을 때, 몰래 사형 집행인을 찾았다. 공식적으로는 마을에서 기피받는 존재였지만, 다친 몸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사형 집행인은 직접 부러진 뼈를 맞추고, 탈구된 어깨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마치 정골사처럼 뼈를 교정하는 이들의 손길은 의외로 정교했고, 치료 효과도 뛰어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형 집행인은 칼이나 도끼를 능숙하게 다뤘고, 해부학에 대한 지식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때때로 처형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추가 조치를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응급처치 능력이 길러졌다. 중세 유럽에서 의료 수준이 낮았던 시기, 사형 집행인은 외과 의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며 상처를 봉합하거나 감염을 막는 방법을 익혔다.


또한,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그들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사형 집행인은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존재였기에,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돌 때 시신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에는 전염병에 걸린 시신을 빠르게 치우는 것이 마을 전체를 살리는 일이었기에,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하고 소독하는 일을 담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염병 예방을 위한 지식을 축적했고, 일부는 약초나 치료법을 연구하며 방역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이렇게 보면 사형 집행인은 단순히 사람을 처형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정골사, 외과 의사, 전염병 전문가 등 예상치 못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중세 사회의 일종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잔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을 살리는 방법도 함께 익혀야 했던 시대였다.

역사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중세의 사형 집행인은 가장 배척받는 존재였지만, 정작 위급한 순간에는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었다. 잔혹한 직업이 의학적 지식을 낳았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시대가 만들어낸 기묘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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