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질문, 잊혀진 여성 작가의 부활
역사 속에서 많은 여성 예술가들은 당대의 사회적 편견과 평가 기준에 의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문학계에서도 이러한 불공평한 평가의 희생자가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년 ~ 1851년) 입니다. 그녀는 현대의 고딕 소설과 SF 장르의 기초를 마련한 작가로 평가되지만, 생전에는 주로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메리 셸리는 1797년 영국에서 페미니스트 철학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와 정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성장 배경은 지식인 집안에서의 풍부한 교육과 사상적 영향이었으며, 이는 그녀의 문학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직후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끊임없는 상실과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1818년, 메리 셸리는 그녀의 대표작인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을 발표합니다. 이 소설은 인류 최초의 과학 소설로 평가받으며,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이 작품이 단순한 괴기 소설로 취급되었고, 특히 여성 작가가 이 같은 이야기를 썼다는 이유로 문학적으로 평가절하되었습니다. 심지어 초기 출판 당시에는 저자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메리의 남편인 퍼시 셸리가 이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메리 셸리가 생전에 받았던 문학적 평가의 문제는 단지 성별에 대한 편견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고딕 문학의 틀을 빌리면서도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인 시도를 보여주었지만, 당대의 독자들은 이를 이해하고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퍼시 셸리와의 관계는 오히려 그녀의 작품을 개인적인 배경으로 왜곡하여 읽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괴기 소설이 아닌, 인간성과 과학의 윤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탐구라는 점에서 재평가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문학 비평과 과학 소설 연구의 발전은 메리 셸리가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공포 문학의 고전으로만 평가되지 않고, 사회적 편견, 과학의 책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메리 셸리의 사례는 예술과 문학의 평가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그녀가 남편의 명성과 편견으로 인해 저평가되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후대에 의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단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예술은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탐구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은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재평가되고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