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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예술가의 잊혀진 예술 세계를 다시 보다_4

거리의 시선을 담다 - 잊혀질뻔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세계

by 김형범

예술의 역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합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이 남긴 작품과는 다르게 잊혀지거나, 심지어는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채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 예술가들은 그러한 부당한 평가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생전에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은 거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2월 1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내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주로 시카고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마이어는 가정부라는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틈틈이 사진을 찍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수십 년 동안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채 필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사진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뉴욕과 시카고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녀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사용해 거리의 사람들, 풍경, 건축물, 그리고 자신을 찍은 셀프 초상 사진 등을 촬영했습니다. 그녀의 사진은 일상 속의 인물과 도시 풍경을 생동감 있게 포착하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사회적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인물 사진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순간들은 그녀의 사진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그녀가 생전에 거의 전시되지 않았습니다. 마이어는 자신의 사진을 예술로서 발표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많은 필름들이 현상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몰두했으며, 자신이 기록한 세계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평생을 보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한 발견 덕분이었습니다. 2007년, 시카고의 사진 애호가 존 말루프(John Maloof)가 경매에서 우연히 구입한 필름 뭉치를 통해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후 말루프와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이어의 사진들은 전시되고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 《Finding Vivian Maier》(2013)는 그녀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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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이제 "20세기 최고의 거리 사진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진은 단순히 거리의 풍경을 찍은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는 예술적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한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례는 예술의 평가 기준과 예술가의 의도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녀는 자신이 예술가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예술적 가치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술은 단지 주류의 인정과 평가로만 정의되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되고 해석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이미지들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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