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세 마사히사의 사진과 영화 『레이븐스』로 본 사랑과 상실
예전에 사진 찍는 일을 즐겼던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한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연인과 함께 있을 때면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낸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순간은 마법처럼 멈춰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진을 볼 때마다 당시의 행복한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그렇게 담아놓은 행복한 순간들도 시간이 흐르면 늘 같은 의미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관계가 끝난 뒤에 다시 보는 사진은 더 이상 과거의 행복을 상징하지 못하고, 오히려 돌아갈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일깨우는 도구로 변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의 사진작가 후카세 마사히사(Masahisa Fukase)에 대해 알게 된 후, 이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영화 『레이븐스(RAVENS)』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는데, 즉시 내가 예전에 봤던 사진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1934년에 태어난 후카세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룬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아내 요코(Yoko)와의 결혼 생활을 사진으로 담은 작업들로 유명하다. 1964년에 결혼한 후카세와 요코는 격정적이고도 복잡한 관계를 이어갔다. 그는 아내와 함께하는 일상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1973년에 시작된 ‘From the Window’ 시리즈는 매일 아침 집의 2층 창문에서 출근하는 아내 요코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https://youtu.be/OxyMpU70UJA?si=TJRJunK3DGrzCFZG
처음에 이 사진들은 부부의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진 속 요코의 표정 역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의 요코는 웃으며 남편의 카메라를 향했지만, 또 다른 날의 그녀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불편한 눈빛으로 렌즈를 바라보기도 했다. 사진은 점점 두 사람의 감정적 거리와 불편한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록물이 되었다. 결국 요코는 후카세의 끊임없는 사진 촬영과 집착을 견디지 못하고 1976년 그를 떠났다.
이별 후 깊은 우울증과 상실감에 빠진 후카세는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까마귀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까마귀라는 피사체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슬픔과 고독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결국 1986년에 이 작업을 묶어 사진집 『까마귀(Karasu)』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얻으며, 1986년부터 2009년 사이 최고의 사진집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카세의 삶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그는 1992년 자주 찾던 술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고,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채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기록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별과 상실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영원할 수 없듯, 사진에 담은 순간 역시 영원히 같은 의미로 존재하지 못한다. 후카세의 사진은 사랑과 행복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이것이 그의 작품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렌즈를 통해 영원을 꿈꾸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프게 드러났다.
영화 『레이븐스』가 앞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면, 후카세 마사히사의 삶과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으로 남긴 사랑의 흔적이 때로는 슬픔을 상징하지만, 그 안에는 결국 우리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자신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신의 렌즈에는 과연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