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랑, 중국은 지혜, 일본은 부모… 문화가 담긴 이 하나의 이야기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통증 중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니입니다.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으라는 진단을 받으면 으레 겁부터 나기 마련인데, 이 치아가 우리 삶의 어느 시점에 튀어나와 고통을 주는지, 그리고 각 나라에서는 왜 이 치아를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중일 세 나라가 사용하는 단어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언뜻 보면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유사한 표현을 쓸 것 같지만, 사랑니만큼은 완전히 다릅니다. 단어에 담긴 의미도, 거기에 얽힌 문화적 상상력도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에서는 이 치아를 ‘사랑니’라고 부릅니다. 사랑을 알기 시작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 그 시기에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이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시기의 사랑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열병처럼 찾아오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랑니의 통증은 첫사랑과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성장통처럼, 사랑니는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감정과 삶의 한 시기를 함께 묶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 치아에 붙인 것이지요.
반면 중국에서는 이 치아를 ‘智齿’, 즉 ‘지혜의 이’라고 부릅니다. 영어권에서 wisdom tooth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자라나는 시기에 이 치아도 함께 나기 때문에, 인생의 어느 정도 성숙한 시점에 등장하는 상징처럼 여긴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을 함께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 명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표현은 조금 더 독특합니다. ‘親知らず(오야시라즈)’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부모님이 모르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에는 과거 일본의 평균 수명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랑니가 나는 나이가 되기 전에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치아를 ‘부모가 모르게 나는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길어졌지만, 여전히 그 시대의 흔적이 언어 속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같은 시기에 자라나는 같은 치아인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전혀 다릅니다. 한국은 감정, 중국은 이성, 일본은 삶의 유한함이라는 주제를 각각 담아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차이를 넘어, 각 문화권이 인간의 성장과 성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