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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수표 한 장

그림 한 점으로 밥값을 치른 천재의 유쾌한 상상력

by 김형범

누군가와 밥을 먹고 계산할 차례가 됐을 때, 수표 뒷면에 무언가를 그리더니 그대로 계산대에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 대다수는 장난이라고 생각하거나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엉뚱한 행동을 당당하게 하면서도, 오히려 그 장면이 전설처럼 회자된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초현실주의의 아이콘,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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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는 미술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기이하며, 동시에 천재적인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그의 그림은 꿈과 무의식, 왜곡된 현실의 이미지로 가득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한참을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런 달리가 단지 캔버스 안에서만 기이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도 누구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달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계산할 때 수표로 비용을 지불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표의 뒷면에는 늘 그의 그림이 한 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그린 진짜 달리의 작품이었죠.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발했습니다. 누구도 달리의 그림이 그려진 수표를 은행에 가져가 현금으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표를 은행에 제출하면 명시된 금액이 지급되지만, 달리의 그림이 그려진 수표는 그것 자체로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수표를 은행에 내고 돈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인 화가가 직접 그린 드로잉을 소장할 것인가.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 그 수표는 현금화되지 않고, 달리의 그림과 함께 소중히 보관되었을 것입니다.


이 일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달리가 자신의 명성과 예술성을 경제 활동에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림 그려줄 테니 공짜로 밥 좀 주세요"라는 식으로 구차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제안했습니다. ‘내 예술은 이 한 끼 식사의 값어치를 충분히 합니다’라는 자신감, 그리고 그 말이 모두에게 설득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실제로 2019년, 달리가 수표에 남긴 드로잉 작품 한 점이 경매에 나와 약 25,000달러에 낙찰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계산 당시 식당이 받은 수표 한 장이 시간이 지나 고가의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식당이 이득을 본 셈이고, 달리는 예술을 통해 물질을 넘는 가치를 증명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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