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와 저작권 분쟁, 그리고 소련의 균열
그 게임은 ‘테트리스’였습니다. 당시 소련 과학 아카데미 산하의 컴퓨터 센터에서 근무하던 한 연구원,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단순한 취미로 이 퍼즐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블록을 쌓아 올리고 줄을 맞춰 없애는 이 간단한 게임은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곧 디스켓에 담겨 다른 연구소로, 다른 도시로 퍼져 나갔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복사된 테트리스가 국경을 넘어 동유럽을 거쳐 서방 세계까지 흘러들어가면서,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IBM PC 버전으로 이식된 테트리스는 게임 매니아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몇몇 서방의 기업인들은 이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정식 계약도 없이, 무단으로 테트리스를 유통하거나 심지어 저작권을 샀다며 주장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테트리스의 원 저작자인 파지노프는 왜 자신의 게임으로 돈을 벌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당시의 소련 체제에 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개인이 만든 소프트웨어나 아이디어는 모두 ‘국가의 자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개인이 창작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국가의 시설과 자원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면 개인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파지노프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테트리스의 권리는 소련 정부 산하의 대외무역부 기관인 ELORG(엘로르그)로 귀속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이 만든 게임으로 한 푼도 벌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테트리스는 불법 복제와 엉터리 계약을 통해 서구의 수많은 플랫폼에 이식되었습니다. 패밀리컴퓨터, 애플 II, 아타리, 오락실 기판까지, 테트리스는 마치 공공재처럼 누구나 복제해서 유통하는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방의 게임 회사들은 서로 엉켜 있는 라이선스 문제 속에서도 아타리, 세가, 닌텐도 등의 대기업들이 저마다 테트리스를 유통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닌텐도가 ‘게임보이’라는 휴대용 콘솔을 준비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닌텐도는 테트리스를 게임보이의 기본 번들 게임으로 포함시키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저작권 문제를 추적했습니다. 그렇게 소련까지 날아가 직접 협상에 나선 인물이 바로 닌텐도의 파트너이자 테트리스에 주목했던 개발자 헹크 로저스였습니다. 그는 복잡하게 얽힌 엉터리 계약서들을 분석해 허점을 찾아냈고, 결국 소련 정부와의 직접 계약을 통해 닌텐도가 정식 비디오 게임용 라이선스를 획득하게 만듭니다.
소련 정부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식 계약 체계와 저작권 개념에 대해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서투르고 허술했던 초창기의 계약서 때문에 여러 기업이 서로 ‘내가 정당한 권리자’라고 주장했지만, 닌텐도의 날카로운 법적 대응과 체계적인 준비가 결국 테트리스의 정식 유통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저작권 분쟁을 넘어, 소련 체제의 경직성과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기억됩니다. 창의력과 혁신이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는 구조, 계약서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폐쇄적 행정 시스템, 그리고 국제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관료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테트리스는 그렇게 소련 내부의 균열을 세상에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냉전이라는 거대한 체제 싸움 속에서도 결국 개인의 창의력이 체제의 틈을 뚫고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테트리스 컴퍼니’를 통해 저작권 보호가 이뤄지고 있고, 파지노프 역시 일부 권리를 회복했지만, 이미 한 번 저작권 없이 세상에 퍼져버린 게임이라는 점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많은 팬들이 테트리스의 상업화보다 자유로운 팬 창작물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자유, 창작의 권리, 그리고 체제가 통제하지 못한 아이디어의 힘. 테트리스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그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전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