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은 소녀와 그 곁을 지킨 감독의 따뜻한 비밀
영화 마틸다를 떠올리면 먼저 강한 인상을 남기는 건 주인공의 반짝이는 눈빛과 당당한 태도입니다. 어른보다 똑똑하고 정의로운 아이가 불합리한 어른들에게 맞서며 스스로의 삶을 바꿔나가는 이야기는, 어릴 적 우리 모두가 바랐던 어떤 꿈의 모양을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영화 속 마틸다를 연기한 마라 윌슨이, 실제로도 영화만큼이나 특별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촬영 당시 마라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대사를 외우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연기 외적인 사정이었습니다. 어머니 수지 윌슨이 유방암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기 때문입니다. 촬영장에서는 씩씩하게 웃고 있어야 했지만, 집에 돌아가면 병세가 깊어지는 어머니 곁을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 마라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감독이자 마틸다의 아빠 역을 맡았던 대니 드비토, 그리고 마틸다 엄마 역의 레아 펄먼은 단순한 동료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마라가 혼자 있는 날이면 종종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연극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내주었습니다. 수영장 파티에 데려가 함께 웃고 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함께 연기하는 어른이 아니라, 마라가 잠시라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진심 어린 어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시간들 속에서도 마라의 어머니는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가 정식으로 완성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마라는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단 한 장면도 보지 못한 채 떠났다는 생각은, 마라에게 오랫동안 슬픔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마라가 조금 더 성장했을 무렵, 대니 드비토는 조용히 그녀 곁에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라, 사실은…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마틸다를 보셨어."
그 말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처럼 조심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마라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상상만 해왔던 장면,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그 순간을 그제야 비로소 실제로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니 드비토는 마라의 어머니가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되지 않은 영화의 편집본을 들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오직 그녀를 위해. 병실의 작은 화면 속에서 수지 윌슨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의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켜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