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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Jul 08. 2024

구룡채성: 이제는 사라진 홍콩의 뒷모습

홍콩 영화로 되살아난 역사의 그림자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구룡성채: 무법지대>는 홍콩의 숨겨진 역사를 스크린에 담아냅니다. 1980년대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중국에서 온 불법 이민자 진락군의 이야기를 그리며, 과거 홍콩의 열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임봉, 고천락 등 홍콩 영화계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구룡성채라는 특별한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2024)_포스터

흔히 '구룡성채'로 알려진 이곳의 진짜 이름은 '구룡채성'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1993년 철거 과정에서 발견된 현판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성채'가 아닌 '채성', 이 작은 차이는 이곳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군사 요새에서 시작해 난민의 안식처가 되고, 결국 무법지대로 변모한 이곳의 역사가 그 이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구룡채성 길거리 사진

구룡채성의 역사는 홍콩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독특한 사례입니다. 19세기말 청나라의 군사 요새로 시작된 이곳은, 홍콩이 영국 식민지가 된 후에도 특별한 법적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 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점차 '3불관(三不管)' 상태의 무법지대로 변모했습니다. 최고 14층 높이의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수직 슬럼',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 좁은 골목과 지붕 위 통로 등 구룡채성만의 독특한 환경은 당시 홍콩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80년대 홍콩, 어수선한 구룡성채천 | 사진작가 Greg Girard

구룡채성의 독특한 풍경과 그곳에서 펼쳐진 인간 드라마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장이모우 감독의 '영웅본색' 등에서 구룡채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문학 작품으로는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가 구룡채성에서 영감을 받아 사이버펑크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배경이나 '슈팅 게임 시리즈', '섀도우런' 같은 게임에서도 구룡채성을 모티브로 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룡성채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영화 : 쿵푸허슬(좌) 공각기동대(우)

1994년, 구룡채성은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조성된 구룡채성 공원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옛 성채의 흔적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이곳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구룡채성 공원(2024)_직접 찍음

<구룡성채: 무법지대>와 같은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잊혀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마주하고, 그 속에 담긴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룡채성 공원을 걸으며 우리는 과거의 혼돈과 현재의 평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홍콩이라는 도시 자체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역동적인 현재와 복잡한 과거가 공존하는 홍콩, 그 축소판이 바로 구룡채성의 역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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