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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든 창작물, 보호받을 수 있을까

예술인가, 기술인가… 혼란스러운 저작권의 경계

by 김형범

한 장의 그림을 생성하기 위해 몇 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은 붓을 들지도 않았고, 마우스를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문장 몇 줄을 입력했을 뿐입니다. “초현실주의 스타일로 해가 지는 숲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모습”이라는 짧은 프롬프트에 따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놀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 장면이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 누군가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과연 우리는 이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2025년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음악, 영상, 심지어 글까지도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의 일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림과 사진 분야에서는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AI 도구가 널리 활용되며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몰라도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창작 방식은 기존의 저작권 체계에 어떻게 들어맞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AI가 개입한 창작물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해석과 판단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에서 나온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2023년, 미국 저작권청(USCO)은 그래픽 노블 ‘새벽의 자리아’에 대해 저작권 등록을 거부했습니다. 이 작품은 AI 모델 미드저니로 생성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었고, 작가는 자신이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장면을 조정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당국은 "AI가 생성 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적 통제가 미흡하다"며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아무리 감동을 준다고 해도, 그것이 창작자의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와 같은 원칙은 영화 분야에서도 확인됩니다. 세계적인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최근 수정된 규정을 통해, AI가 사용된 영화도 후보로 인정될 수 있음을 밝히며 단서를 달았습니다. "AI나 디지털 도구의 사용이 후보 지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수상작은 인간의 창의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조건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는 AI가 제작 과정에 개입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인 평가 기준은 여전히 인간의 창작성과 표현력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같은 주제를 두고 상반된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3년 베이징 인터넷 법원은 AI를 활용해 만든 여성 이미지를 두고 “프롬프트 설계와 매개변수 조정 등에서 인간의 미적 선택과 판단이 반영되었다”는 이유로 저작권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AI가 단독으로 만든 결과물이 아닌, 인간의 지적 개입이 존재할 경우 그 창작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뒤인 2025년 4월, 장쑤성 장자강시 인민법원은 같은 AI 생성 이미지에 대해 "창작자의 기여가 없다"며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해당 판결에서는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생성된 결과물이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에 머무른다고 본 것입니다.


국가마다, 또는 사안마다 다른 판단이 내려지는 가운데, 우리는 AI 창작물의 저작권 여부를 판단할 기준 자체를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단순한 법률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게 되는 이유는, AI가 예술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본질은 무엇이며, 표현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의 저작권 제도를 설계하는 데 핵심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AI를 도구로 사용해 창작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AI를 단순한 보조 기술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을 확장해주는 새로운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술,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와 협업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창작자들은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과연 독창적인 표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동일한 지시어와 설정으로 누구나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개인의 고유한 창작으로 보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때문에 AI 생성물에 대한 권리는 전통적인 저작권 보호보다는, 사용권 부여나 출처 명시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 저작권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단순히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하는 일은 AI와 인간이 함께 창작하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기준과 철학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개입이 있는 창작은 보호받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인간의 감성과 표현이 지닌 고유한 가치는 결코 대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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