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의 탈을 쓴 권력에 민주시민이 해야 하는 일은
어떤 사회가 무너지는 첫 조짐은 늘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권리가 제한되고, 절차라는 이름 아래 다수의 목소리가 묵살될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황하고, 그다음엔 체념하며, 결국 침묵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길목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이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며 굴러가야 할 수레바퀴가 어딘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체제입니다. 시민이 대표를 선택하고, 권력이 오만하지 않도록 감시하며, 잘못된 판단에 대해 책임을 묻는 과정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법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치주의 역시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국민의 뜻이라도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권력은 반드시 법의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법은 누구의 편에 서야 할까요? 절차만 지키면 그것이 정의일까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공이 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치의 장에서 시민의 선택을 대신해서 법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시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당한 판결’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누가 주권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박구용 교수는 이러한 사법 시스템을 ‘도덕 재판’이라 설명합니다. 증거와 사실이 아니라, 인물의 태도와 내면을 판단하며 재판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마녀재판과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지금의 정치 재판 혹은 형사 재판이 그러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느낍니다. 증거보다는 의도, 사실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해지고, 이로 인해 국민이 만든 정치적 선택이 무력화된다면, 우리는 법치의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는 결코 스스로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은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지탱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가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본래의 목적을 잃고 맙니다. 법이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그 법이 과연 정당한가를 묻는 광장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광장이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권력의 정당성을 다시 확인하는 민주적 행위 그 자체를 뜻합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작동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기, 법이 민주주의를 짓누르고 있다면, 시민은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법은 민주주의의 통제 안에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법을 뛰어넘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이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을 만든 이들의 정당성’이며, 그것은 곧 국민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아니라, 법이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보조하고 있는지를 묻는 시민의 깨어 있는 시선입니다.
이 시선이 바로,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