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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요즘 청년들이 더 이상 일본을 동경하지 않는 이유

by 김형범

어느 날 유튜브 숏츠를 보다가 흥미로운 영상을 하나 접했다. 일본의 젊은이 몇 명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요? 그건 좀 믿기 어렵네요. 지금 한국이 얼마나 앞서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처음엔 가볍게 웃고 넘겼지만,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이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세대의 인식과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지금의 청년 세대가 일본에 대해 갖는 감정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과는 크게 다르다. 35년 전,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뉴타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를 본 적이 있었다. 결국 들키고 말았고,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은 매우 엄격한 표정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단호한 반대 의사를 밝히셨는데, 당시에는 일본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면 자신이 직접 도끼를 들고 스크린을 찢어버릴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에는 단지 ‘문화 침투’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기억과 전쟁 직후 일본이 누렸던 경제적 이익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어렴풋이 그분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까지 강하게 거부해야 할까, 생각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0044.jpg 그 당시 일본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잡지 "뉴타입"

사실 그 시절의 한국은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분명 역사적으론 깊은 상처를 안겨준 나라였지만, 동시에 선진 기술과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 음악, 전자기기는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은밀히 유통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것에 열광했다. 경계와 동경이 공존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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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문화 개방은 많은 사회적 갈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름은 서서히 달라졌다. 일본은 장기 불황 속에서 경제와 사회 전반이 정체되었고, 디지털 전환에는 둔감하게 반응했다. 고령화와 폐쇄적인 정책 속에 ‘변화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반면 한국은 외환위기라는 시련을 거치며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전환했고, IT 산업과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이제는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 세계 순위에 오르고, K-POP 아이돌이 도쿄 돔을 채운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일본을 위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일본 문화는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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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역전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다

이런 흐름은 단지 경제 지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감정과 기억, 교육과 경험이 뒤엉켜 만들어진 세대 간 인식의 변화였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과거 식민지 지배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그들에게 그 시절은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교과서 속 한 장면이거나, 언급을 꺼리는 정치적 과거일 뿐이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다르지 않다. 과거의 반일 감정보다는 지금 당장의 실용성과 취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본은 이제 저렴하고 안전한 여행지, 감성 있는 중고 브랜드, 그리고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있는 곳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이 변화가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느낀다. 기억은 흐려지고, 감정은 덜어지고, 거리는 가까워진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자기 자리를 찾았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더 이상 과도한 감정을 쏟지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경계하지 않지만,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도 않는다. 균형 잡힌 거리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지금의 세대는, 어쩌면 우리가 꿈꾸던 ‘자립된 감각’을 처음으로 손에 넣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몰래 펼쳐보던 <뉴타입> 잡지 한 권이 이렇게까지 먼 시대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청년들 사이에는 단순한 나이 차이를 넘어, 세대를 가르는 세계 인식의 전환이 있다. 유튜브 숏츠 속 젊은 일본인의 말은 그래서 단지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시대의 변화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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